지금은 3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 실행 기간(2016~2020년)이다. 그러나 현 기본계획은 과거 국가가 산아제한 목표를 제시하고 자원을 투입해 실적을 점검하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서 대통령이 지난해 직접 나서 ‘국가가 아닌 사람 중심 저출산 대응’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한마디로 기본계획의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재구조화해야 한다. 재구조화의 첫 단계는 정책비전으로서 성평등 제시다. 작년 말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 저출산의 근본 대책”이라고 했다. ‘여성의 삶을 억압하지 않는 것’을 재구성하면 ‘저출산의 근본 대책은 성평등 실현’이 아닐까? 성평등 비전이 필요한 이유는 출산 주체로서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내용으로 현 기본계획이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계획에 명시된 ‘출산율 1.5 달성’은 여성의 삶에 대한 억압의 단적인 증거다. ‘국가가 결혼ㆍ임신ㆍ출산ㆍ돌봄 지원을 늘리면 아이를 저절로 낳는 존재’ 정도로서 여성을 보는 시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70, 80년대 개발독재 정권은 불법이었던 낙태시술을 보건소에서 무료로 해주는 사업을 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적인 인구 증가율 감소를 산아제한 정책의 성과로 이룰 수 있었다. ‘투입-산출’식 구도가 순식간에 태아를 없앨 수 있는 개입에서는 효과적 수단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주도적 사고와 가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이다. 특히 개인적 선택으로서 임신ㆍ출산ㆍ돌봄에 당장의 정책적 자원 투입이 더 이상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국가는 출산ㆍ돌봄이 가능한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하면서도 선택은 출산 주체로서 여성과 가족이 하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따라서 출산율 1.5 달성 목표를 폐기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적 환경 조성’으로 정책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또 ‘결혼 지원을 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본계획의 전제를 바꿔야 한다. 혼인한부부는 그래도 아이를 낳기 때문에, 결혼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만들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전제를 기존 계획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청년 일자리와 주거 지원이 1ㆍ2차 기본계획에서보다 많이 늘어났다. 굳이 출산과 연결하지 않아도, 청년세대 지원은 중요한 국가 정책적 과제다.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확대라는 차원에서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지원 자체만으로 결혼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남성 중심ㆍ가부장적 사고 방식과 기대는 버려야 한다.
여전히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는’ 남성적 인간관에서 본다면 국가의 지원 확대가 결혼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는 순간 ‘시월드’(시댁과의 관계망)에 편입되어 결혼 전 겪지 못한 성차별을 경험하는 여성에게 결혼은 어른이 되는 관문이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이러한 결혼 관련 부정적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평등한 노동시장 개혁, 성차별적 가족관계의 변화 등을 담은 비전을 새 기본계획 구성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성별 임금격차, 경력단절, 유리천장 등 노동시장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 과제를 뚜렷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독박육아를 잊고 남녀 일ㆍ가정 양립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어머니의 성, 혹은 부모의 성을 모두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족법 개정을 통해 가장으로서의 남성 이미지가 사라지고 엄마 아빠가 모두 가장으로서 인정받게 해야 한다. 그러면 더 많은 여성들이 ‘한국사회가 나를 사람으로서 존중하는구나’하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람 중심 저출산’ 대응의 본질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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