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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산동농협 50억 황당사기사건 알고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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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산동농협 50억 황당사기사건 알고 봤더니

입력
2018.05.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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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수수료 10% 제공” 말에 속아

지점장이 고객 예치금 멋대로 넘겨

용의자, 현금화 후 잠적했다 붙잡혀

발급 안 되는 지급보증서 무단 발급

법인인감 임의발급 등 내부통제 허술

농협측“개인 일탈행위… 배상책임 없다” 발뺌

수십억대 금융사기에 연루된 경북 구미 산동농협 전경.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수십억대 금융사기에 연루된 경북 구미 산동농협 전경.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북 구미시 산동농협 50억 사기사건은 허술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주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산동농협은 “개인적 일탈행위”라며 사건축소와 책임회피에 급급해 빈축을 사고 있다.

산동농협 50억 사기사건을 수사중인 경북 구미경찰서는 지난달 30일 구속한 윤모(44)씨가 해외투자유치과정에 ‘지급보증서’가 필요했던 부동산임대업체를 끌어들여 벌인 희대의 사기극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 2월 서울에 본사를 둔 유명상조회사 자회사인 부동산임대업체 D사가 산동농협 장천지점에 맡긴 50억 원을 김모(54) 지점장으로부터 건네 받아 잠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1월쯤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경찰 조사결과 윤씨는 지난해 11월 감사 이모(54)씨 및 김 지점장을 만나 미리 ‘작업’을 했다. 상품권과 채권 등을 중개하는 투자자로 소개한 뒤 잦은 만남을 통해 신뢰를 쌓았다.

윤씨는 먼저 사회선배의 소개로 산동농협 감사 이씨를 먼저 만났다. 이 감사는 윤씨를 김지점장에게 소개했다. 이어 자신에게 투자하면 투자금의 5%를 수수료로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하자 수수료율을 10%로 올리기로 상호 합의했다.

이어 윤씨는 D사가 수도권에 2,000억원 규모의 해외투자유치과정에 지급보증서를 발급받지 못해 애를 먹는 정보를 듣고 접근했다. 외국투자자는 D사 측에 중도 인출 가능성이 있는 예금잔고증명서 대신 인출이 불가능한 50억원 이상의 지급보증서를 요구했다. 지급보증서는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도 본점으로부터 사전 결재를 받아 발급할 정도로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제2금융권인 지역농협 등 상호금융업체에선 내규상 불가능하다.

윤씨는 산동농협에서 지급보증서를 받아주겠다며 제안했다. D사는 윤씨 말을 믿고 지난 2월 21일 20억원, 22일 30억원을 산동농협 장천지점에 맡겼다. 김 지점장은 산동농협 장천지점 명의로 자기앞수표를 발행, 농협에 보관해 두겠다며 4월20일 만기의 지급보증서를 D사에 발급했다. 지급보증서는 김 지점장이 임의로 만든 것이었지만 조합장 직인과 인감증명서가 첨부됐다. 본점 통제를 받지 않고 중요 서류가 발급된 셈이다.

더 황당한 일은 예치 바로 다음날인 23일 벌어졌다. 김 지점장은 윤씨에게 D사가 예치한 50억 원을 산동농협 수표로 고스란히 넘겼다. 윤씨는 이 수표를 다른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며 수표와 현금으로 교환해 잠적했다. 경찰은 윤씨가 실제로 약속한 수수료 일부를 이 감사와 김 지점장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 같은 사기행각은 D사가 지급보증서상 만기일인 지난달 20일 맡겨둔 50억 원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드러났다. 윤씨를 통해 한시적으로 고객 예치금을 굴리려던 김 지점장 등은 윤씨의 잠적으로 상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D사는 지난달 23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신고 5일만에 서울에 은신중인 윤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산동농협 감사와 장천지점장도 윤씨에게 속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전 공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윤씨가 인출해간 현금과 수표의 행적과 여죄 여부도 수사 중이다.

지역 금융권에서는 산동농협 감사와 지점장이 허술한 내부통제시스템에 남의 돈이지만 두 달만 잘 굴리면 수억 원을 챙길 수 있다는 욕심에 고객 예탁금을 유용하다가 화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설픈 인감관리 등이 화를 부채질했다.

산동농협 측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농협 차원에서 D사에 50억원 배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동농협 관계자는 “D사 측이 해당 지점에 예치했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통장이나 증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쪽에서는 확인되는 것이 없고, 수표를 발행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지점장과 감사에 대해서도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윤씨가 받아간 수표는 산동농협 장천지점에서 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인감증명서도 발급됐다. 궁색한 변명이라는 지적이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들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산동농협이 배상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농협이 먼저 배상한 뒤 문제의 지점장과 감사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라고 설명했다.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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