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미국 본사 투자계획 없다” 확인
파트너사 말만 믿고 장밋빛 발표
석 달 만에 ‘없던 일’… 졸속 행정
투자자 검증시스템 등 비판 도마
광주시가 야심 차게 추진하던 미국 글로벌 의료기업 메드라인 투자유치 프로젝트가 결국 ‘국제적’ 헛발질로 끝났다. 시는 “메드라인이 광주에 투자해 전문인력 및 청년일자리 350개가 생길 전망”이라고 공언했지만 정작 메드라인은 “투자계획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될 성 싶지 않은 투자유치에 매달린 시의 투자자 검증시스템 등 어설픈 투자유치 행정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시는 3일 메드라인 본사의 광주 투자의향을 확인한 결과, 메드라인 측이 한국에 새로운 공장을 지을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는 지난달 26~28일 미국 시카고를 방문한 투자유치 담당 부서 직원들이 부사장 론 바스(Ron Barth)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이 같은 의사를 확인했다.
앞서 시는 2월 5일 연 매출 10조원 규모의 메드라인이 3,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청년일자리 350개가 생길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또 메드라인이 빛그린산업단지에 의료용품 멸균 및 패키징 공정을 처리할 공장을 건립해 연말부터 가동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밝혔다. 시가 지난해 10월 초 메드라인의 한국 측 파트너사인 메드라인코리아 대표 A씨의 투자제안을 받고 같은 해 12월 1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주전남본부와 3자 투자의향서 작성하는 등 투자유치를 위한 세부 사항을 협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3월 초 시 고위 간부 등이 메드라인의 투자 계획 등이 담긴 기업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광주시감사위원회가 감사를 벌여 “메드라인의 투자 실체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고, 아니나 다를까 메드라인 본사도 이를 인정했다. 시가 “메드라인 투자유치를 시작으로 빛그린산단이 청년일자리의 요람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자화자찬하면서 ‘김칫국’을 마셨지만 결국 ‘헛물’만 켠 꼴이 됐다.
시가 메드라인 본사의 의중도 모른 채 한국 파트너사와 투자유치에 매달린 데는 결정적 정보력과 적절한 대응 능력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시는 지난해 10월 A씨의 투자 제안을 받고도 A씨가 본사로부터 한국 내 투자와 관련해 대표성을 위임 받았는지 등에 대한 확인도 하지 않았다. 시는 또 2월 19일 메드라인 존 밀스 회장이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서한을 보내 투자의지를 밝혔다고 했지만, 이미 경영 일선에 물러난 존 밀스 회장에겐 투자 결정권이 없었다는 것도 몰랐다. 시는 지난달 메드라인 본사의 투자의향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방문하고서야 이런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특히 2월 시청 내부에서조차 투자 유치를 둘러싸고 A씨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투자유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투자유치 관련 고위 간부는 “투자 유치는 확실하다”며 아랑곳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의 이해할 수 없는 졸속 행정으로 메드라인의 투자 유치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메드라인코리아 측이 투자유치 진행 과정에서 투자정보를 유출했다며 되레 광주시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현 단계에선 메드라인 본사의 투자계획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이를 확인한 상황에서 이 부분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협의할 계획은 없지만 하지만 상대 쪽에서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가져온다면 협상을 안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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