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었다. 1979년 영국의 동물보호 단체인 ‘생체해부 반대연합’(The National Anti-Vivisection Society)이 제정한 이날 세계 곳곳에서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행사가 열린다.
국회에서도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와 동물복지국회포럼 주최로 실험동물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필자는 발제를 통해 실험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보호법에 ‘실험동물의 보호·복지에 관한 조항’을 명시하자는 동물보호법 개정방향을 제안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 차례의 동물보호법 개정이 있었지만, 실험동물의 복지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동물실험 찬성과 반대 의견만 분분할 뿐, 현장에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는 부족했고 제도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 반면 실험에 쓰이는 동물의 숫자는 2013년 196만 마리에서 2017년 308만 마리로 70%나 증가했다. 정부는 바이오산업의 발전으로 앞으로 동물실험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1959년 영국의 러셀과 버치가 주창한 동물실험의 3R원칙은 국제사회에서 실험윤리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3R이란 동물의 사용을 대체(Replacement)하고, 사용하는 동물의 숫자를 감소(Reduction)시키며, 동물의 고통을 개선(Refinement)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 제 23조에도 동물실험의 원칙으로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동물실험 3R 원칙, 한국에서는 무용지물?
그런데 문제는, 이 원칙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에 대한 규정은 우리 법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동물실험기관은 동물실험의 윤리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모든 동물실험은 위원회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심의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모든 윤리위원회의 균형적인 평가를 위해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외부위원을 포함하는 조항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국 실험기관의 자율에 맡기는 윤리위원회 제도가 동물의 복지나 윤리성을 얼마나 잘 보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과학 분야 종사자가 실험내용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부족한 까닭에 평가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동물실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무성에서 실험시설 인정, 실험자 면허증, 프로젝트 허가증을 발급받도록 하는 엄격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동물실험 현장에 전문 인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진통·진정·마취제의 사용 등 수의학적 방법에 따라 조치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조치를 할 인력은 실험기관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8년 현재 기준 동물실험실시기관 중 수의사를 고용한 기관은 37%에 불과하다. 실험기관에 동물 의료전문가인 수의사가 없는 경우 실험기관에서 동물 고통 경감을 위한 즉각적인 수의학적 처방 및 처치가 어렵다. 그래서 동물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안락사를 해야 할 시점이 훨씬 넘은 상태인데도 인도적 처리 없이 고통에 방치되는 등 동물복지를 위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실험에 쓰이는 동물을 생산하는 실험동물공급업체에 대한 규정이나 관리체계도 미흡하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발의한 일명 ‘실험동물 지킴이법’이 통과되면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 실험동물을 공급받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워낙 등록 기준이 미흡하다보니 동물의 처우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려동물 생산업이 허가제로 전환되었듯이, 위생·방역·안전관리 기준과 종 특성에 맞는 사육시설·관리 등 복지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충족하는 시설만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좋은 법 뿐 아니라 '윤리적인 실험자'도 중요
법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실험자들의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 지난 26일 농림축산검역본부와 (재)생명과학연구윤리서재가 공동주최한 생명과학 연구윤리 세미나에서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영국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의 바니 리즈(Barney Reeds) 과학이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실험 현장에서의 노력’을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에 관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좋은 법만 가지고는 실험윤리를 확립하기는 어려우며 실험기관 내에서 제도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실험을 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동물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더 비용이 적게 들고 빠르며 정확도가 높은 대체실험법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세계 동향도 전했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다. 동물실험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의 필요에 의해 동물실험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동물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사람의 책임이다. 실험동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려진 동물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곧 우리 사회의 동물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이번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실험용 쥐에게도 ‘볕 들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ㆍ사진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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