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대가’일수록 타인에겐 후하고 자신에겐 인색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일가를 이룬 사람은 남을 평가하는데 신중하며 깎아내리는 법이 없다. 반면, 어설프게 성공한 사람은 웬만해선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 경험해본 바로 그렇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인정하는 잘난 인간이 자기 잘났고 남 못났다며 또는 내가 하면 정당하고 남이 하면 부당하다며 떠드는 모습을 볼 때면 그동안 어렴풋이 품었던 존경심이 한순간에 사라지곤 한다.
오래전 만났던 ‘가왕’ 조용필을 대가로 감히 인정하는데 여전히 주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데뷔 35주년 기념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조용필은 은퇴를 번복하고 하드코어 록을 표방하며 돌아온 서태지 등 여러 후배 가수들을 평가해달란 부탁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특정 장르 또는 가수에 대한 평가는 당대에 이뤄질 수 없다. 지금 내가 뭐라 얘기하기에는 섣부르다. 음악은 ‘자기 표현’의 방식이다.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며 에둘러 후배들의 도전과 시도를 응원했다.
이어 “필생의 꿈인 뮤지컬 연출을 위해 매일밤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를 반복해 듣곤 한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자란 게 너무 많다”며 자신의 떨어지는(?) 음악적 재능을 탓했다. 천하의 조용필이 부족함을 자책하다니! 그 순간만큼은 가식적인 겸양이 아닐까 괜히 의심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하고도 절반이 바뀐 지금, 데뷔 50주년 공연을 앞둔 요즘도 한결같아 보인다. 얼마전 그는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면 뭔가 이유가 있다. 그래서 엑소 방탄소년단 빅뱅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며 “라틴 등 다양한 해외음악을 들을 때면 코드나 화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곤 한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건 뭐든지 괜찮고 좋지만, 남이 하는 건 뭐든지 이상하고 잘못됐다 우기는 시대다. 이른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어이없는 지적질이 판치는 요즘이다.
각자가 속한 조직의 이해와 눈 앞의 목적과 상관없이 자신에겐 엄격하고 혹독하지만, 타인에겐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과 몸가짐이 아쉬운 세상이다. 15년전 만났던 조용필을 떠올리며 드는 생각이다.
조성준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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