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이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연출 안판석/극본 김은)를 통해 다시 한 번 저력을 입증하고 있다. 고된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직장 여성들은 손예진이 연기하는 윤진아를 통해 남다른 위안을 얻고 있고, 뭇 남성들은 "역시 손예진"을 외치며 설렘을 표하는 중이다. 억지스럽게 꾸미지 않은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손예진은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손예진은 기자를 향해 반가운 손 인사와 전매특허 눈웃음을 건넸다. 흰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어느 때보다 화사한 미모를 뽐낸 그는 '예쁜 누나'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만난 손예진에게 "눈이 왠지 슬퍼 보인다"는 말을 건네자, "그래 보이나. 촬영이 얼마 안 남은 것도 있고 우리끼리는 벌써 그리워하는 느낌이다. 안판석 감독님과의 작업이 정말 좋다. 최고의 드라마 현장"이라며 웃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방영을 앞두고 천하의 손예진도 몹시 긴장했다. 오랜만의 안방극장 복귀인데다 '멜로퀸' 수식어의 무거운 중압감이 겹쳤으니 실로 당연하다.
이에 대해 손예진은 "드라마 환경 자체가 말이 많다. 개선해야 한다고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드라마 들어갈 때 배우들은 10년 늙을 각오를 하고 임한다"며 "안판석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용기를 냈을 지 모르겠다.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감독님이랑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 나이에 하지 않으면 언제 이런 느낌의 드라마를 찍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 없다"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찍고 완벽하게 쓸 컷만 찍는다. 감독님의 위대한 업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된다"면서 웃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돋보이는 건 손예진의 '취중 연기'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예쁘게 소주를 들이키던 그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시원한 맥주 먹방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재밌는 건, 마시는 '척'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음주 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 진짜 맥주 마시고 찍었어요. 마시는 신을 거의 마지막으로 몰아서 찍었거든요. 처음부터 감독님이랑 '진짜 술을 마시는 게 어떨까' 하는 얘기를 나눴고, 촬영하면서 마셨는데 너무 리얼한 거지.(웃음) 경선이(장소연 분)랑 곤약 얘기하는 이자카야 장면에서 생맥주를 마셨는데 제가 워낙 술을 못 먹다 보니 찍다가 만취 상태가 되더라니까요."
1화 엔딩신에서의 댄스 장면 역시 손예진의 매력이 빛난 순간이다. '내가 제일 잘 나가'를 틀어놓고 사무실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윤진아를 서준희(정해인 분)가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장면.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도 급상승했다.
"감독님한테 '무슨 춤을 추나, 무슨 노래 나오냐'고 물었어요. 시나리오엔 클럽 음악이 나온다고 쓰여 있었거든요. 감독님이 그 노래를 추천했는데, 뮤직비디오 영상 같은 걸 찾아보니 도저히 따라 하지는 못 하겠더라고요. 급히 배울까 생각도 했지만 안무를 맞춰서 하는 것도 웃길 거 같고, 제가 춤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긴장이 많이 됐죠. 어색하니까 그때도 맥주 한 캔을 먹고 췄어요. 하하. 맨 정신에는 못 추겠어서. 너무 취하면 동작이 어설퍼져서 안되니까 약간의 취기를 빌려 춤을 췄죠."
이 작품은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지만 손예진의 지인들에게도 인기 폭발이다. 직접 연기를 하면서도 즉각적으로 전해지는 반응에 놀랄 따름이라고.
"작품 하면서 이렇게까지 (주변인들이) 열렬히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최근에는 영화만 했고, 그 전에 드라마 할 때를 돌이켜봐도 이렇게 뜨거운 반응은 처음이라 너무 행복해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노고와 고충이 대본만 보면서도 느껴졌어요. 그 모습들이 진짜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깊이 있게 보여주길 바랬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사들을 보면 뿌듯해요."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로 변화를 거듭해온 손예진은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내려놓으려 애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 작품씩 보여주면서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에요. 이번에 드라마를 하면서 걱정된 게 지금까지 너무 많은 연기를 보여줬고, 내가 어떤 배우인지 알고, 어떤 표정으로 말을 했을 때 재미없어 하면 어떡하나 생각했어요. 너무 잘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결코 좋은 연기가 나오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더 힘을 빼자고 생각해서 연기했어요. '아무것도 보여주려고 오버하지 말자' 다짐했고 지금 다시 조금 마음이 편해졌죠."
오랜 시간 진심을 다해 연기를 해온 손예진. 그의 곁에는 한결같이 지지해주는 팬들이 있다. 고마운 팬들은 연기를 하는데 있어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짜 오래된 팬들이 많아요. 한 15년 전부터 저를 지지해주고 서울에 찾아오는 중국 팬, 일본 팬들이 있는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어요. 공식 팬클럽도 제가 20대 초반이고 그들이 고등학생일 때 봤는데 지금도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요. 어찌 보면 연기자들은 자기만족이 첫 번째거든요. 남을 위해서 할 수 없는데, 내가 생각하는 만족을 떠나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닐 때도 열심히 하는데 칭찬 받으면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잖아요. 제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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