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자장비가 많아졌고, 동력계통을 제어하는 센서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결함의 원인이 단순 기계적 문제보다 전자장비의 오작동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전자장비의 오작동으로 인한 결함은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수리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와 제조사 또는 판매사 간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현행법상 소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이유로 제조사 또는 판매사에게 교환·환불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결함을 주장하는 소비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므로, 자동차와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소비자가 제품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고, 이는 소비자가 차량 결함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형 레몬법”이라 불리는 개정 자동차관리법(2019. 1. 1. 시행)에서는, “인도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인도된 때로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을 두어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일부 완화하였다. 그러나, 제작사에서 블랙박스 장착 등과 같은 외부 작업을 이유로 추정을 번복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개정 자동차관리법에 의하더라도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결함의 증상이나 그 원인을 추론할 수 있을만한 자료들을 확보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언제든지 사진 촬영이나 동영상 녹화가 가능하므로 예전에 비해 자동차의 결함 증상을 객관적인 증거로 확보하는 것이 용이해졌지만, 일부 사례의 경우 당황한 나머지 결함과 관련성이 적거나, 결함 내용이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진 또는 영상만이 촬영되어 있어 실제 분쟁에서 증거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수만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결함의 형태나 양상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을 일률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유의사항들만 주의하면 수집된 자료가 향후 법적 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영상 자료가 있으면 객관적인 자료가 확보되었다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상을 촬영하는 것 이상으로 해당 영상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해당 증상을 촬영한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촬영한 시간과 장소 등을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화면과 휴대전화 시계 등을 함께 촬영하는 것이 좋다.
또한, 단편적인 영상만을 촬영할 경우 판사나 변호사, 감정인 등 분쟁에 관여하는 제3자가 보았을 때 문제가 되는 증상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고, 증상을 확인하더라도 그 원인을 추론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가속 페달·브레이크 페달 등 다른 장치의 조작 여부, 증상이 발현된 이후의 상태 등 증상이 나타난 전후 사정들도 함께 촬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상 촬영 시에는 이상 소음이나 진동 등 결함 증상이 화면에 정확히 담길 수 있도록 다른 소음이나 방해물이 영상에 섞여 들어가지 않게 유의하여야 한다. 이상 소음이나 진동 등이 화면에 충분히 담겼다면, 영상을 촬영하면서 해당 증상에 대한 구체적인 구두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좋다.
자동차를 주행하던 중 이상 증상이 나타났을 경우 동승자가 있다면 안전을 위해 동승자에게 촬영을 부탁하여야 하고, 동승자가 없는 경우라면 최대한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영상 등을 촬영하여 영상 촬영이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한편,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서비스센터나 정비소에 정비 입고를 할 경우 출고 시 “자동차 점검·정비 명세서”를 교부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정비를 의뢰하였다면 차량 출고 시 정비명세서를 반드시 받아두어야 하고, 정비명세서는 향후 분쟁에서 차량의 결함 여부를 증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법으로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바로 결함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자동차의 결함을 원인으로 소송이 진행될 경우, 결함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전문지식이 있는 감정인에게 감정을 의뢰하게 되는데, 이 경우 감정을 신청한 측에서 감정 비용을 1차적으로 부담하고 재판 결과에 따라 감정 비용을 최종적으로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정해진다. 따라서 분쟁을 제기한 소비자가 1차적으로 감정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감정이 이루어지더라도 특히 수입차의 경우 감정인이 해당 차량에 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어서 감정만으로 차량의 결함이 모두 밝혀진다고 보장하기는 어렵고, 만일 감정으로도 결함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분쟁을 제기한 소비자는 감정 비용까지 모두 떠 안게 될 수도 있다.
일부 제조사나 판매사에서는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결함이 명백한 경우에도 교환이나 환불 등의 조치를 취하는 대신 소비자에게 소송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은 자동차 결함에 관한 제도적 허점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제도적인 허점이 있는 상태에서 자율주행자동차 등 첨단기술이 탑재된 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자동차의 결함에 대한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 피해를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결함을 증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으므로, 실제 상담을 진행해 보면 소비자로서는 차량에 문제가 있더라도 소송을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 문제는 결국 자동차와 관련한 결함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민사소송과 같이 결함을 주장하는 차주가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만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에서 결함의 원인은 이를 개발하고 제작한 제작사 또는 해당 차량을 정비한 정비사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분쟁에서도 의료사고나 환경소송의 경우와 같이 입증책임을 제조사 또는 판매사, 정비사에게로 전환하거나 적어도 이를 증명할 능력이 확보된 제3의 전문기관을 통해 증명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관련한 분쟁의 경우 막대한 소송비용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소송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미국의 경우 변호사 비용을 포함하여 자동차의 결함에 따른 모든 소송비용을 제조사 또는 판매사가 부담하도록 하는 주(州)도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자동차관리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
강상구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을거쳐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관련 다수의 기업자문 및 소송과 자동차부품 기업 로버트보쉬코리아에서의 파견 근무 경험 등을 통해 축적한 자동차 산업에 관한 폭넓은 법률실무 경험과,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얻게 된 자동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에 관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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