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세워진 도보다리 건너
장시간 노출된 상태로 심각한 표정
소떼길선 소나무 식수행사로 우의
한강물ㆍ대동강물 뿌리며 덕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깜짝 ‘벤치회담’은 27일 전체 일정을 통틀어 매우 독특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남북 분단의 최전선에 마주 앉은 두 정상이 진지하고도 다양한 표정으로 둘만의 대화에 몰두한 모습은 전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두 정상은 오전 회담 후 각각 오찬과 휴식시간을 갖고 4시간 30분여 만에 다시 만나 판문점 내 ‘도보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 35분쯤 도보다리에 들어서자 두 정상은 이날 일정 중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산책을 겸한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두 정상이 나란히 걸은 도보다리는 1953년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 감독위원회가 판문점을 드나들 때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만든 다리다. 두 정상은 파란색으로 단장하고 너비를 넓힌 약 70m 길이의 도보다리를 천천히 걸어가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녹슨 군사분계선 표지물 앞에 멈춰 섰다. 이어 담담한 표정으로 짧은 감상을 나눈 뒤 오후 4시 42분쯤 부근에 설치된 의자에 마주 앉아 ‘벤치 회담’을 이어갔다.
야외 차담 형식으로 진행된 회담은 이날 유일한 친교 일정이자 사실상의 단독 회담으로 30분간 쉼 없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적극 손짓을 써가며 대화를 이끌었고, 김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면서도 간혹 안경을 고쳐 쓰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 순간순간 진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동안 남북 정상들의 단독 회담이 있었지만 장시간 노출된 장소에서 이처럼 생중계 된 적은 이번에 처음이다.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더욱 시선을 끌었지만 짧은 담소가 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1m 거리에 마주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간 것으로 봐 상당히 깊숙한 교감을 나눴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두 정상은 오후 5시 11분쯤 자리에서 일어서 오후 회담이 예정된 평화의 집으로 이동했다. 산책과 벤치 회담을 포함해 무려 44분간 단독 대화를 나눈 것이다.
앞서 두 정상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경로로 쓰인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동편 공터의 ‘소떼길‘에서 식수행사를 진행하며 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두 정상은 정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소나무 앞에 나란히 서서 미리 준비된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각각 세 차례씩 던져 뿌린뒤 문 대통령은 대동강물을, 김 위원장은 한강물을 소나무에 주며 화합을 기원했다. 김 위원장이 “어렵게 찾아온 새봄을 소중하게 잘 키워나가야 한다”고 덕담을 건네자 문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판문점=공동취재단ㆍ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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