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한국에 좋은 일 있길... 긴밀한 조율에도 감사”
CNN “남북 전쟁 끝내기로 선언” NYT “과감한 목표 설정”
WP “비핵화 세부내용 부족”… 전문가들 “기대 부풀려져”
NYT “문 대통령, ‘김정은-트럼프’ 중재라는 큰 과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7일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은 각별한 관심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커다란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북한의 잇단 핵ㆍ미사일 개발 위협과 관련해 가장 큰 대립각을 세웠던 당사국이자, 다음달 또는 6월 중을 목표로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개최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이러한 반응은 상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날 회담의 핵심 의제이자 국제 사회의 최대 안보 현안인 ‘북한의 비핵화’의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성과는 부족하다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는 않다.
미국 정부는 이날 오전(미국 현지시간 26일 오후) 남북 정상회담 시작에 맞춰 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역사적 만남에 대해, 우리는 한국인에게 좋은 일이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상) 회담이 한반도에서 미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중대한 진전을 이루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또, “우리의 동맹인 한국이 (남북ㆍ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우리와 긴밀히 조율하고 있는 데 대해 감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에 대해서도 지속적이고 긴밀한 소통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미 주요 언론들도 이날 내내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실시간 속보로 보도하며 ‘새 역사가 시작된다’(CNN방송) ‘(남북 정상의) 외교 댄스와 평화 스핀’(뉴욕타임스) 등의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역대 북한 최고 지도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잠시나마 남쪽으로 월경하는 순간에 크게 주목했다.
CNN은 홈페이지에 별도 속보창을 개설, 남북 두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전했다. 이날 오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났던 순간을 “두 코리아 간의 역사적인 악수”라고 표현했고, 오후에는 “두 코리아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도 했다. 판문점 합의문 발표 이후엔 ‘남과 북이 전쟁을 끝내기로 선언했다’는 제목의 뉴스에서 “64년간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올해 공식적인 종전이 선언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회담에 대해 “김 위원장이 휴전선을 건넌 건 몇 달 전만 해도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남북이 올해 종전 선언과 비핵화라는 ‘대담한 목표(bold goals)를 세웠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평화를 향한)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김정은은 자신이 완전히 합리적인 글로벌 지도자임을 알리고 싶어한다”면서 그의 변신을 분석했다. 모두 이날 회담에 대한 긍정적 평가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신중한 반응도 나온다. WP는 판문점 합의문과 관련, “두 정상에게 비핵화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관한 세부 내용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회담에 앞서 신문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 계획에 달려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분석가들은 김정은의 핵 포기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데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너무 부풀려져 있다”고 말했다. 미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독일 마셜펀드’의 로라 로젠버거 연구원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였던 지난 2012년 2월 체결한 ‘윤달 합의(미사일 실험 유예)’가 3개월 만에 파기된 사실을 언급했다. ‘말뿐인 약속’이 깨지는 일은 또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AP 통신 또한 “남북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했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해선 밝히지 못했다”면서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게다가 바로 전날, 미국 국민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파급력이 커질 수 있는 소송을 제기한 것도 향후 북미 관계 개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에 장기 억류됐다 뇌사 상태로 돌아와 끝내 사망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는 26일(현지시간) “아들은 북한에 잔인하게 구금돼 있다 살해됐다”면서 북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냈다.
NYT는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커다란, 그리고 냉혹한 도전을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하는 와중에도 시선 한쪽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겐 교활한 적(김정은)과 충동적인 동맹(트럼프)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요구에 순순히 굴복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향후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자면 이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상징적인 전진은 이루어 냈지만, 앞으로가 어쩌면 더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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