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정권 단기 경기부양 탓 늘어
R&D 인색하고 매출은 높아
“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 우려”
상위 3개 이하 기업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독과점 산업이 제조업 분야에서만 58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1년 독과점이 크게 심화된 후 이 같은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들은 제한적인 경쟁환경 속에 상대적으로 낮은 연구ㆍ개발(R&D) 투자에도 불구하고, 높은 매출을 거두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발표한 ‘2015년 기준 시장구조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1~2015년 광업ㆍ제조업 분야의 독과점 산업(1위 업체 시장점유율이 50% 이상 또는 상위 3개사 점유율 75% 이상)은 정유 승용차 화물차 맥주 반도체 등 58개로 조사됐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13년(56개)보다 2개 늘어난 수치다. 독과점 산업 수는 2006~2010년 47개를 유지하다가 2011년 59개로 껑충 뛴 후 50개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김호태 공정위 시장구조개선과장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일부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이에 해당 시장 내 상위 3개사 점유율이 증가하며 독과점 산업 수가 50개 후반까지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이황 고려대 교수도 “이전 정권에서 이 같은 독과점 구조 등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금융확대, 건설경기 부양 등 단기적 경기부양에 집중하며 독과점 문제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독과점 산업의 평균 매출액은 2,818억원으로 그 밖의 산업평균(260억원)보다 10배 가량 높았다. 정유 반도체 승용차 등 초기 투자비용이 커서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대규모 장치산업에 독과점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독과점 산업(58개) 중 해외 기업에 시장 개방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산업이 27개(46.6%)에 달했다. 김 과장은 “특히 화물차 맥주 산업 등은 해외개방도가 낮아 경쟁압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경쟁촉진 시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이들 독과점 산업의 R&D 비율은 1.6%로 그 밖의 산업(1.7%)을 밑돌았다. 특히 정유(0.2%) 담배(0.9%) 맥주(0.3%) 등은 R&D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독과점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이 높고 해외 개방도가 낮다 보니 ‘미래 먹거리’ 투자에 소홀해도 매출 유지에 큰 무리가 없는 셈이다. 신현윤 연세대 교수는 “경쟁이 제한적인 독과점 구조에서는 기술개발이나 원가절감, 경영합리화를 위한 투자유인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독과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낳고 나아가 산업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최종재 시장의 독과점 구조에 따라 중간재 부품소재 기업들은 소수 대기업에 전속거래(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부품 등을 공급할 때 10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체결하는 거래구조) 형태로 묶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에 노출되고 부품 경쟁력도 약화된다”며 “독과점 구조에서 파생되는 이런 문제에 공정위가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현윤 교수는 “글로벌 단위로 경쟁이 벌어지는 시대에서 독과점을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독과점 사업자들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사의 신규 진입을 저지하는 행위 등을 적극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2015년 기준 서비스업 분야의 독과점 산업은 위성통신 재보험 위성방송 등 33개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최초 조사인 2010년(37개)보다 4개 감소한 수치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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