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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지만 가벼운… 유병재 ‘B급 농담’에 환호하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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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지만 가벼운… 유병재 ‘B급 농담’에 환호하는 청춘

입력
2018.04.26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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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

어설픈 위로 대신 냉소로 위안

SNS서 꾸준한 소통행사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

티켓 판매 1분 만에 매진

개그 문화의 세대교체 해석도

방송인 겸 작가 유병재가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방송인 겸 작가 유병재가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없이 무거운 생각으로, 한없이 가벼운 농담을 쓰고 있습니다.”

방송인 겸 작가 유병재(30)가 지난 19일 오후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포부다. 그는 ‘B의 농담’이라는 단어로 즉흥 4행시까지 선보이며 언어유희를 뽐냈다. ‘B의 농담’은 지난해 유병재가 진행한 ‘블랙코미디’에 이은 두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다. 그는 국내에선 비주류에 해당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쇼에 힘을 쏟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 수위나 심의 걱정 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앞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공연장뿐 아니라 펍(선술집) 같은 곳에서도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B의 농담’의 B는 중의적이다. 유병재의 이름 병재의 영어 첫 자이고, 비주류를 의미하는 B급을 뜻하기도 한다. B급을 자처한다지만 ‘B의 농담’은 블록버스터 대우를 받고 있다. 티켓 판매 시작 1분 만에 전석(4,000석) 매진됐고, 예매사이트 서버다운까지 초래했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는 유병재의 ‘블랙코미디’를 독점 공개한 데 이어 이번 공연의 기획·제작에 참여했다. 해외에서도 유병재의 ‘쇼’를 볼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출판, 굿즈, 방송에서도 유병재는 히트를 부르는 이름이 됐다. 유병재는 젊은 층에서 하나의 현상이다.

유병재의 3종 휴대폰 케이스. 얼굴에 맞춰 사진을 찍고 SNS에 게재하는 행위가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유병재의 3종 휴대폰 케이스. 얼굴에 맞춰 사진을 찍고 SNS에 게재하는 행위가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출판·굿즈·방송계까지 번진 ‘유병재 신드롬’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2030세대의 마음을 울린 유병재의 어록이다. 그는 어설픈 위로보다 냉소적인 공감으로 더 큰 위안을 안긴다. 유병재는 주류보다 비주류를, 잘난 사람보다 지질한 사람을 자처하며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감정을 선사한다. 온라인을 떠돌던 유병재의 B급 농담들은 지난해 10월 농담집 ‘블랙코미디’로 출간돼 6개월 만에 25쇄를 찍었다.

유병재는 아이돌 가수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굿즈의 영역에서도 인기다. 유병재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유병재의 얼굴 사진이 크게 인쇄된 휴대폰 케이스 3종을 출시했다. 휴대폰 케이스를 얼굴에 맞춰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하는 행위가 놀이처럼 번지면서 케이스는 인기 품목이 됐다. 아이돌 가수 굿즈 못지않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병재 모습이 인쇄된 티셔츠, 수면안대, 에코백, 안마봉 등도 출시됐다.

유병재의 주요 무기는 공감이다. 그는 연예인처럼 매끈하거나 훤칠한 외모를 지니지 않았다. 자신감 넘치기보다 주눅든 듯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 난 탓으로 취업 공포에 시달리고, 학자금 대출 상환 등에 짓눌려야 하는 보통 청춘들의 초상을 대변한다. 그는 웃음으로 부조리한 청춘의 현실을 고발한다. 자신을 낮추면서도 항변하듯 할 말은 하는 유병재에게서 2030세대는 쾌감을 얻는다.

유병재 현상을 블랙코미디의 카타르시스 효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풍자 개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개그계의 주요 장르였다. 유병재의 접근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매진까지 시킬 정도로 젊은 층이 열광하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유병재는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의 프로모션을 위해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병재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응모작. 유병재 인스타그램 캡처
유병재는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의 프로모션을 위해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병재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응모작. 유병재 인스타그램 캡처

TV에서 독립… ‘온라인 놀이판’으로 새 문화 창출

유병재의 새로운 전략도 주효했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팬층을 쌓은 후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연예인이 TV 방송을 통해 입지를 다진 후 새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보편적인 과정을 거스른 것이다.

유병재는 “많은 사람들과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동영상 채널 유튜브와 SNS 안에서 또래들과 꾸준히 놀았다. ‘농담집 블랙하우스 출간 기념 낭독의 발견’, ‘문학의 밤 유병재 굿즈 쇼케이스’, ‘대실망 물물교환전’ 등 네티즌이 바로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지난달 SNS에서 재미로 시작한 ‘유병재 그리기 대회’도 그의 남다른 대중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기 대회엔 4,300여 점이 응모했고, 유병재는 이 중 13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작은 ‘B의 농담’ 관객에게 전시회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B의 농담’을 기획한 YG스튜디오코미디 측은 “지금까지 선보인 웃음들은 모두 유병재와 팬들이 함께 만든 것”이라며 “소통하는 개그가 큰 호응을 불러오고 있다”고 밝혔다.

유병재 현상은 개그 문화의 세대교체로 읽히기도 한다. TV의 정제된 코미디보다 형식과 내용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창작 활동이 시대의 감성에 맞는다는 해석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TV방송에서 개그맨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며 “기존 개그맨이 방송 플랫폼에서 독립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병재의 접근 방식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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