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에 투입된 경찰 인력은 36명이다. 지원 인원은 빼고 대외에 공식적으로 밝힌 인력만 따져서 그렇다. 근 몇 년간 경찰 수사 중 이처럼 많은 인원이 동시 투입된 적이 있었나 싶다.
인력 만 ‘매머드급’이 아니다. 수사팀 노고도 엄청나다. 퇴근은 고사하고, 누가 어제 1시간을 잤다, 다른 이는 며칠 밤 꼬박 샜다, 술 한 잔 안 걸치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이 경찰청사 곳곳을 누빈다. 경찰이 이 수사에 사활을 걸었다는 징후는 이곳 저곳에서 발견된다.
그럼에도 경찰 내엔 위기감이 가득하다. 금방 손만 뻗으면 잡을 것 같던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이나 ▦경찰청장(현재 차관급)의 장관급 격상 같은 숙원이, 이번 사건 수사 초반의 헛손질 탓에 공염불이 될 거라는 불안감이다.
언론에서는 계좌추적 등이 뒤늦었다면서 ‘뒷북 수사’라 꼬집고, 여당 핵심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루돼 있어서 그렇다는 ‘정권 눈치보기 수사’ 비판이 쏟아진다. 남북정상회담 같은 대형 이슈조차 뒷전이다.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 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의 거취 문제를 운운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경찰로서는 억울할 지 모른다. 밤잠 못 자면서 기록을 뒤지고, 단서가 될 만한 진술을 받으려고 참고인이나 피의자와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는 수사팀의 입장에선,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왜들 그러냐”고 하소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 그 순간’을 한 번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주범인 ‘드루킹’ 김동원(49)씨 일당의 휴대폰을 분석하면서 나온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김경수’라는 이름이 나온 4월 5일의 그 순간부터 복기해 보자.
우선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의 말을 따라가 보면 그 심각성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는 사건 초기 브리핑에서 “주범 드루킹이 수백 통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김 의원은 의례적인 답변 몇 건을 보냈을 뿐 대부분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거짓이었다. 김 의원이 직접 드루킹에 ‘홍보를 부탁한다’면서 기사 링크 주소(URL)까지 보낸 게 언론에 뒤늦게 공개됐다. 이 서울청장은 “그 때만 해도 수사팀으로부터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했고, 실무 책임자인 수사부장은 “수사팀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이후에도 경찰 해명은 계속 달라졌고, 달라진 해명에도 미심쩍은 부분은 천지다. 김 의원 이름이 처음 포착된 게 5일이었고, 이를 검찰에 보고해 함께 검토에 나선 게 9일이었다. 쉬쉬하다 언론에 보도된 게 14일, 결국 16일이 돼서야 이 서울청장이 나섰다. 검찰에 갈 때까지 4일, 외부에 알려지기까지 9일, 브리핑에 나설 때까지 11일을 주춤거렸다. 그간 내놓은 해명 어디에서도 그들이 마땅히 보였어야 할 ‘수사의 기본과 원칙’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경찰은 “검찰이 힘을 남용하고 있다”며 날을 세워 왔다. 과거 일부 정치검사들이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사건을 덮어버리고, ‘죽은 권력’을 향해서는 먼지 한 올까지 털어내면서 사법처리하려 했던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과연 경찰은 다른지 의문이다. 정권 실세 등장 앞에 주춤거리고, 수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접근해보자고 고민한 게 아닌가 싶은 일 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며 노력만 강조했지만, 그건 경찰 스스로 사건 판단조차 제대로 못하는 아마추어라고 자백하는 것밖에 안 됐다.
경찰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다. 드루킹 한방에 수사권 조정이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게 생겼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언론이나 국민들이 “경찰에 수사권을 줘도 되겠다”고 생각을 바꾸도록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죄가 의심되면 그게 누구든 조사한다’는 기본과 원칙을 무시했던 수사가 얼마나 큰 재앙을 몰아오는지, 우린 너무 많이 봐 버렸지 않은가.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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