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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옥행 열차를 피하려면

입력
2018.04.24 15: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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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도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해보자. 천당 경제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국민이 골고루 그 혜택을 누리는 경우이다. 지옥 경제는 정반대이다.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처럼 경제가 뒷걸음질치고 물가는 뛰는데 식량도 없고 의약품도 없다. 국민은 생지옥이 되어버린 나라를 탈출하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1차 징후는 성장률의 정체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도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연평균 성장률이 0.8%였고 2010년 예산 규모가 1985년보다 작았다. 1980년대 말의 일본과 같은 지옥행 열차가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ㆍ중 간의 통상 갈등은 위기의 예고편이다.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 분업구조가 파열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2~2016년 미국과의 무역에서 연평균 200억 달러 이상, 중국으로부터는 두 배가 넘는 5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중국은 우리한테 산 자본재와 부품으로 만든 물건을 미국에 수출하고 1조 6,000억 달러 이상(연평균 3,378억 달러)을 쓸어 담았다. 미국 교역상대국 중 우리의 무역흑자는 열 번째이지만, 대중국 흑자가 미국에서 번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비용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는 이러한 분업구조는 지속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80년대 말, 일본은 현재의 우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미국시장에서 86년부터 89년까지 연평균 53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한편 우리나라에게 주로 중간 기자재와 부품을 수출하고 47억 달러를 보탰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한 기자재로 물건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고 받은 76억 달러의 3분의 2이다. 한·미 양국 모두에게 최대 흑자국이었다.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84년 경상수지 적자가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인 GDP의 2.5%에 이르자 플라자 합의를 주도해 엔화 가치를 3년 만에 2배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우리나라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많은 분야에서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극복하면서, 일본은 우리에게 미국을 비롯한 주력 수출시장을 내주고 기나긴 불황의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 우리는 80년대 말의 일본과 처지가 비슷하다. 미국은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그 뿌리가 의도적으로 저평가된 환율에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기술격차를 줄이려는 중국의 거센 도전도 마찬가지로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가 견제구를 던지는 것을 보면 중국이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첨단 분야에서 우리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중국이 기술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다. 일본과 달리 내수시장마저 취약한 우리로선 주력 수출시장을 내주게 되면 성장 동력이 아예 꺼지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지옥경제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지옥 행 열차를 피하려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인 미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설정하는 게 최우선 과제이다. 플라자 합의와 같은 극단적 실력 행사를 통해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상승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환율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그 첫걸음이다. 이와 함께 미국이 원하는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장벽도 선제적으로 철폐해야 한다.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무역과 투자의 파트너를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베트남에서의 성공사례가 인근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로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북한은 최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으므로 최근의 상황 변화는 우리 경제에도 축복의 전조이다.

지속적 경쟁력 향상 노력은 진부하지만 언제나 정답이다. 일본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장비나 자동차 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글로벌 일감을 만들지 못하면 지옥 행 열차의 맨 앞자리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가혹한 미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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