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갈 길 멀다” 경계 이유는
핵폐기 시점 북한 확답 못 받은 탓
김정은, 평양 방문한 폼페이오에
‘시간표 맞춰 함께 양보’안 내놔
“비핵화 신속 행동땐 보상 무제한”
미국 ‘빅뱅식 일괄타결’ 당근 제시
5월 또는 6월초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샅바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초판에 북한 비핵화를 결판 내는 빅뱅식 일괄 타결 방안을 밀어붙이는 반면, 북한은 비핵화 시기를 최대한 늦추며 단계적 보상을 원해 핵 폐기 속도와 제재 완화 시점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면서도 “갈 길이 멀다”(22일 트윗)거나 “결실이 없으면 회담장 떠나겠다”(18일)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는 것은 핵무기 폐기 시기에 대한 북한의 확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부활절 주말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최대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시간표에 따라 양측이 함께 양보하는 내용의 단계적 합의를 제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방문했을 때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ㆍ동시적 조치를 제안한 바 있다.
양측이 동시에 양보하면서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가겠다는 북한의 구상은 트럼프 정부가 여러 차례 거부 의사를 밝혀온 과거 협상 방식이다. 그간 워싱턴 조야에선 북한이 비핵화까지 시간을 끌면서 동결 조치로 제재 완화의 당근만 챙긴 뒤 약속을 어길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폐기를 위해 신속히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핵과 미사일 시험 동결의 대가로 상당한 수준의 제재 완화를 허락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힐 것이라고 WSJ는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마크 쇼트 백악관 수석보좌관도 이날 NBC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에 대해 “동맹국과의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더 이상 보유하지 않는 완전한 비핵화를 뜻한다”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할 때까지 최대의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신속하게 행동하고자 한다면 (보상은) 무제한일 것”이라면서 “모든 종류의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신속한 비핵화 조치에 합의하면 제재완화뿐만 아니라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까지 북한이 원하는 것을 통 크게 내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 관계자는 이를 양측이 초기에 중대 양보를 하는 ‘빅뱅 접근법’으로 부르며 트럼프 정부가 이를 선호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는 사실상 1~2년 내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날짜를 못 박고 11월 중간 선거 전 비핵화의 중요 단계를 현실화시키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과거처럼 북한이 약속을 어길 가능성도 차단하고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여러 의구심까지 잠재워 북핵 협상을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 치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원하는 당근도 신속히 제공할 수 있다는 파격적 제안으로 북한의 결단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그간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은 여러 차례 나왔다. 다만 트럼프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실질적인 비핵화 행동 조치를 조기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실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결국 북한이 핵 폐기 시기를 얼마나 앞당기느냐로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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