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자치 기능 확대 강조 속
학운위 영향력 계속 커지지만
학교가 당선 개입 등 논란 여전
학부모, 아이에게 해 될까 우려
쓴소리 못해 견제 역할 잃기도
평일 회의로 직장맘 참가 한계
충남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A씨는 최근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학부모 위원으로 입후보하려고 학교를 찾았다가 마음을 접어야 했다. 교장이 직접 “이미 필요한 만큼 학운위원 수를 맞춰놨으니 입후보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만류해서다. 학운위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각 학교마다 5~15명 규모로 설치되는 기구(학부모ㆍ교원ㆍ지역위원 등으로 구성)로, 학교 예산안부터 교육과정, 교과서 선정, 방과 후 또는 방학기간 중 교육ㆍ수련활동 등을 심의ㆍ자문한다. 학부모들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는 등 일정 사유를 제외하면 누구든 학운위원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고, 위원 선출은 학부모 전체회의 혹은 학급 별 학부모 대표회의를 거쳐야 한다. A씨는 “학교 측의 입맛에 맞는 학부모만 위원으로 두려는 행태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이 개별 학교의 자치 기능 확대에 방점을 찍으며 학운위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선거ㆍ운영 비위 논란은 여전하다. 22일 학부모시민단체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참학)에 따르면 새 학기가 시작돼 학운위 구성이 본격화한 지난달 참학에 접수된 23건의 전화상담 내용 중 7건(30.4%)이 학운위ㆍ학부모회 관련 내용이었다. 유형도 ▦학운위원 후보 등록 시 학교가 개입 ▦학교가 특정 후보 당선을 도움 ▦학운위 선거 규정이나 절차 위반 등으로 다양했다.
실제 학부모들은 “학운위원은 사실상 내정된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3 학부모 B(47)씨는 “자녀가 저학년 때 학운위원으로 뽑힌 사람들을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위원으로 두려는 경우가 많아, 임기(1, 2년)를 채우고도 다자녀 조건 등을 활용해 3, 4년씩 활동하는 경우도 잦다”며 “새로운 입후보자가 있어 정원보다 많아지면 경선을 해야 하는데, 학교 측에서 경선까지 가지 못하도록 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운위의 감시ㆍ견제 역할이 무뎌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서울의 한 중학교 학운위원을 지낸 김모(44)씨는 “교장 등 교원위원과 반대 목소리를 내면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많은 사안에서 교장의 입장에 따라가는 학부모 위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학부모들이 다수 모인 온라인 ‘맘카페’에도 ‘교장이 친한 학운위원 자녀들에게 은근히 학급 회장을 계속 하라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학운위원들에게 학교발전기금을 별도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부담이 만만찮다’ 등 학운위 관련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다수 게재돼 있다.
맞벌이 학부모들은 학운위에 참여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2010년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학운위 회의가 일과 이후나 주말에 개최되도록 시ㆍ도 조례 개정을 권고했지만, 직장맘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직장맘이자 초1 학부모인 김모(41)씨는 “학운위 회의가 많게는 한 달에 2, 3번씩 열리고 시간도 교사들의 업무 시간 종료에 맞춰 오후 3, 4시에 진행되는 일이 많다고 해 입후보를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윤경 참학 상담실장은 “교육부가 교육청과 단위학교로의 분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학운위 선거ㆍ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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