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 전부터 동성애 기록
버려진 알 함께 품어 부화도
‘성별 오판 실수’ 등 가설 분분
지난 1월 남극 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에서 턱끈펭귄 한 쌍이 구애춤을 추며 짝짓기를 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흔한 광경이었지만, 이들의 행동은 여느 펭귄 부부와 조금 달랐다. 턱끈펭귄 부리의 크기를 측정하면 암수를 구분할 수 있는데, 아무리 봐도 수컷과 수컷이 짝을 이룬 것 같았다. 이미 다른 펭귄들은 짝을 지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있는 단계였지만, 이들은 한참 늦게 짝을 짓고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펭귄의 동성애에 대한 기록이 이전에도 있었을까? 문헌을 찾아보니 허무하게도 지금부터 약 100년 전 남극에서 아델리펭귄에 대한 관찰 기록이 있었다. 게다가 국내외 많은 매체에서 ‘펭귄의 충격적인 성생활’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뤄졌다. 스콧 원정대에 외과의사로 참여했던 조지 레빅은 1911년부터 1912년까지 남극의 여름 동안, 케이프 어데어에서 수컷끼리의 짝짓기 행동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로서 너무 충격적이라 생각했는지 그리스어로 적었는데, 훗날 그의 기록이 영어로 번역돼 2012년에 공개됐다. 또 남극에서 40년 이상 아델리펭귄을 연구해온 미국 연구자 데이비드 에인리 박사는 펭귄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 간의 삼각관계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동물원에 있는 펭귄들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더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의 2016년 기사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동물원의 수컷 임금펭귄인 스탠과 올리, 아일랜드 수족관의 암컷 젠투펭귄 페넬로페와 미씨 등이 동성 간 커플이었다. 특히 영국 켄트 동물원의 수컷 훔볼트펭귄 점스, 커미트 커플과 미국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수컷 턱끈펭귄 로이와 실로 커플은 다른 둥지에서 버려진 알을 넣어주자, 정성껏 품어 부화시켰다고 한다. 로이와 실로가 키운 탱고의 이야기는 ‘그리고 탱고와 셋이 되었어요(And Tango makes three)’라는 제목의 그림동화 책으로 출판됐다. 한국엔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실제 동성 간 성적 행동을 나타내는 동물은 펭귄 외에도 초파리에서 보노보까지, 450종 이상에서 보고된 바 있다. 자손을 남기지 못하는 동성 간의 사랑이 이렇게 많은 동물들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적 유대감을 증가시킨다거나 성적으로 미성숙한 개체들간의 연습이라는 적응적 가설도 있지만, 반대로 단순히 성별을 오판한 실수이거나 성비가 맞지 않은 채 고립된 효과, 혹은 진화적인 부산물이라는 설명도 있다.
내가 관찰했던 턱끈펭귄 커플이 정말 수컷 간의 사랑이 맞았는지, 그렇다면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소개한 턱끈펭귄 커플 로이와 실로는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실로가 스크래피라는 암컷과 짝을 짓게 되면서 헤어졌으며 로이는 짝을 짓지 못한 수컷 무리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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