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신도시 아파트 가보니
“특정 지역에 왜 혈세 쏟아 붓나”
국토부, 논란에 실버택배 철회
19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A아파트. 한 택배기사가 단지 입구 주차장에 가득 쌓인 택배물품을 카트에 실어 아파트 각 동을 들락날락하며 나르느라 진땀을 뺐다. 일부 입주민은 손수 택배를 찾아가기도 했다. 이른바 ‘택배갑질’에 이어 ‘실버택배’ 도입으로,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는 논란의 중심에 선 아파트의 낯선 광경이다.
보름 넘게 이어진 이 아파트의 택배분쟁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 진입을 막고 있다. 입주한지 얼마 안 된 지난 2월 단지 내에서 택배 차량에 어린이가 치일 뻔한 일이 일어나면서 내린 조치다. 종전엔 소방차와 응급차가 다니는 길을 택배차가 다닐 수 있게 허용했다. 이후 택배 갑질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중재안으로 실버택배 요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특정 지역에만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이 방안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국민적 저항이 거세다.
결국 국토부가 “택배사와 입주민 간 중재를 통해 기존의 실버택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불만을 초래했다”며 백지화 방침을 밝혔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단지 넓은데 카트 배송 무리”
택배사, 정문에 쌓아 놓기도
주민은 “어린이 안전 조치” 항변
차 없는 공원화 단지 증가세
근본적 대책 마련 시급 의견도
이날 입주민들은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경계심을 나타내면서도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대해선 “가혹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주민 최모(38ㆍ여)씨도 “공원화 단지여서 차량 진입 제한은 입주민들의 권리”라며 “아파트에 사는 500명 정도의 어린이를 위한 안전조치이지 이기주의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모(39ㆍ여)씨는 “아예 들어오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안전을 위해 출입을 제한 한 것”이라며 “전국적으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이미 실버택배를 시행중인데, 유독 우리아파트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현재 전국 88개 아파트가 실버택배를 도입중이다.
택배 기사들도 난감하다. ‘택배차를 정문 근처에 댄 후 카트로 배송해달라’는 요구에 CJ대한통운 등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정문 인근에 택배를 그냥 쌓아놓고 가 입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일부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카트 배송에 나서고 있다.
한 택배기사는 “넓은 단지를 다 다녀야 해 반나절은 그냥 간다”며 “택배기사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한탄했다.
정부가 섣부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다산신도시 택배 기사의 배송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실버택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코자 했지만, 수익자 부담원칙에 어긋난다는 국민적 반발 정서를 감안하지 못한 채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상에 차가 없는 공원화 단지를 도입한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과 교수는 “시간대를 정해 택배차량을 드나들 게 하는 것도 대안”이라며 “차 없는 단지 설계 시 지하 주차장 층고를 택배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높이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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