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역고소’ 포럼
“가해자들 기획적 역고소 많아
상업화한 변호사들이 부추겨”
“(검찰) 수사관은 저를 이미 무고의 피의자로 찍었어요. 제가 진실을 얘기하면 고개를 흔들어요. 인상을 쓰면서.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난 수사관 경력이 많고 많은 성추행 피해자를 만났다. 그런데 너 같은 피해자를 본 적이 없다.” (2014년, 회식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무고죄로 고소당한 차진영씨가 피해사실 진술과정에서 수사관으로부터 들은 말에 대한 증언)
‘미투(#Me Too)’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성폭력 말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의한 무고와 명예훼손, 역고소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도리어 피의자가 되는 상황을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돌아보는 포럼이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일 오후 창비서교빌딩 지하2층 50주년 홀에서 ‘의심에서 지지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는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이날 ‘성폭력 피해자를 처벌하다: 낯설고도 위험한 국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했다가 오히려 무고죄의 피의자로 지목된 사건을 돌아보며 국내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 이유, 수사 전개과정, 재판 결과, 후속조치 등을 분석했다. 허 조사관이 사례로 발표한 차진영씨는 성추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성범죄 무고 피의자로 기소됐다가, 2년 8개월 간의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결국 대법원으로부터 성추행 무죄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 기소했던 검사 그 누구도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았고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입은 심리적 손상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허 조사관은 발표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도리어 무고죄의 피의자가 되는 데에는 피해자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진술을 듣는 자들의 신뢰”라고 강조했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 ‘보복성 기획고소’의 실체’라는 주제로 발표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성폭력 피해 이후 가해자들이 ‘기획적으로’ 고소를 시도하는 것에 주목했다. 김 연구원은 특히 이 과정에서 악의적인 역고소를 부추기고 합의금 유도, 사건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돈벌이를 하는 상업화한 변호사 시장을 비판했다. 김 연구원은 이들이 ‘반성하고 있고’ ‘합의 의사가 있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을 강조해 실형을 면하고 선고유예를 받아내는 것을 ‘성공사례’로 광고해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장임다혜 부연구위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전말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최근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활용되어 온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법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피해자 중심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 한국여성의 전화 인권문화국 활동가 재재는 ‘어디에도 없는 ‘진짜’ 피해자 찾기’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성폭력은 허위신고가 많다’는 편견 속에 ‘꽃뱀’으로 호도돼 온 피해자들의 사례를 발표했다.
이날 포럼에는 일반 시민과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해 발표에 이어 열띤 토론으로 미투 운동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갔다. 포럼을 주최한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도에 개소, 현재까지 8만여 회의 성폭력 피해상담과 피해자 지원활동을 통해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인식과 관련 법제도 개선을 촉구해온 여성인권단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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