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청와대 안보실과 국정원에
지난달 말 협조 요청 메시지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시기와 겹쳐
지난달 말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NIS)에 각각 미국측 카운터파트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극비 보안을 당부하며 중대 메시지가 날아 들었다. 미국 최고위급 인사가 부활절(4월1일) 연휴 기간 한국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니,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최고위급 인사는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었다. 남북ㆍ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NIS-CIA’ 접촉이 빈번해진 가운데 중대 메시지가 공식 외교경로가 아닌 ‘스파이 채널’로 전달된 것이다. 미국이 오산 미 공군기지를 지목한 것은 2014년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도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 국장이 이 곳을 거쳐 방북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보안과 안전 때문에 미국의 대북 특사 대부분이 오산 기지를 통해 방북하게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과 서울 외교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폼페이오 지명자의 방북은 형식상으로는 북한 측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전 대북 특사도 대부분 북한이 먼저 제의해서 이뤄졌다. 가장 최근의 클래퍼 국장 방북 때도 북한이 먼저 억류자 석방을 논의하기 위해 장관급 특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하고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즉각 수락했고, 자신의 복심인 폼페이오 지명자에게 방북 지시를 내렸다. 북한이 미국 측에 초청메시지를 전달한 경로는 확실치 않으나, 일부에서는 한국 국정원이 중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역대 방북 미국 특사의 관례로 보면 폼페이오 지명자는 2박3일 가량 일정으로 평양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 논의를 거부해 홀대를 받은 클래퍼 국장의 경우 1박2일 일정에 그쳤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 면담 일정 등을 감안하면 이틀 이상은 머무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지명자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의 외교ㆍ안보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수뇌부를 모두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 때문에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방북 이래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지명자 방문 일정에 맞춰 김 위원장이 정치 일정을 변경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달 초 한국 예술단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은 당초 행사 관람이 예상됐던 3일 합동공연 대신 1일 한국측 단독공연에 참석하면서 “4월 초 정치일정이 복잡해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오늘 나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정치일정이 부활절에 맞춰 방북한 폼페이오 지명자와의 면담 및 지도부 내 대응 논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엘리슨 후커 NSC 한반도 보좌관이 동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후커 보좌관은 폼페이오 지명자가 김 위원장과 김영철 통일선전부장을 만날 때마다 배석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협상전략을 탐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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