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 중국을 방문해야 하는 일이 있어 올해도 중국을 다녀왔는데 한 곳에서 하는 일이 아니어서, 다시 말해서 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하는 일이어서 기차여행을 많이 하였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도 하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일본과 매우 대조되지요. 일본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신경 써야 하는 사회여서 불편하다면 중국은 이런 신경은 안 써도 되지만 남을 고려하지 않는 이들의 행동 때문에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 예의라는 것을 들이댑니다. 남을 고려하고 배려까지 하면 예의가 있다고 하고 배려는커녕 고려도 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다고, 무례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더 생각을 하면 그들은 무례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례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무례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고 무례한 것을 알면서 무례를 범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미국에 살다가 돌아왔을 때 느낀 것과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것까지 미안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늘 남을 의식해서 하며 길을 가다가 조금만 부딪쳐도, 아니 스치기만 해도 미안하다는 말이 습관이 되어 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전혀 남을 고려치 않고 행위를 하고, 부닥치고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중국은 제가 미국에서 돌아올 때의 우리나라보다도 더 남을 고려치 않고 그래서 무례하다고 느끼게 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생각게 되는 것이 이들의 이러함을 무례하다고 느끼는 우리나라가 더 예의가 있고 더 좋은 사회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선 저는 우리가 더 예의 있고 이들이 예의 없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그들은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의 없다고 생각할 뿐이며, 우리가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은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예의의 차이를 우리 안에서도 많이 느낍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예의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예의가 다릅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하며 예의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배려를 요구하고 예의를 강요하기에 젊은이들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예의를 가지고 폭력적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예의는 남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고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데, 젊은이들이 봤을 때 어른들은 예의를 빙자하여 예의를 강요하고 어른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예의가 없고 폭력적입니다.
요즘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이 사회 문제입니다. 이제는 사랑이 식어 더 이상 사귀기를 원치 않는데도 계속 사귀자고 하면 이것은 원치 않는데 사랑한다고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스토커와 같은 거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 데이트 폭력만 폭력이고 성폭력만 폭력이 아닙니다. 스스로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고 강제하면 배려 폭력도 폭력이고 예의 폭력도 폭력입니다. 사랑도 원치 않는 사랑을 하거나 요구하면 데이트 폭력이고 스토커적인 폭력이며, 성도 원하지 않는 것을 힘으로 강제하면 성폭력이듯 스스로 우러나오지 않는 예의와 배려를 요구하고 강제하면 예의와 배려도 예의 폭력, 배려 폭력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예의와 배려는 참 좋은 것이고 서로 간에 예의와 배려가 있는 사회는 아름답고 성숙한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데서 예의와 배려가 저절로 우러나오지 않고 요구될 때 예의와 배려는 오염이 되고 싫고 거북한 것이 되고 말지요. 그러므로 우리 각자 예의 폭력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것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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