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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맘대로 입자"도 결국 상술로… 그렇더라도 맘대로 입자

입력
2018.04.18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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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하이 패션이 강요했던 것을 더 이상 대중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과거 하이 패션이 강요했던 것을 더 이상 대중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스트리트 패션이 하이 패션을 끌고 가고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분명한 건, 과거 하이 패션이 강요했던 것을 더 이상 대중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고가 만들어 내는 강력한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건강함이 무엇인지 혼동하게 만들었고, 광고 속 물건을 사지 못하면 세상에 뒤처진 듯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런 틀은 이제 서서히 깨지고 있다. 이외에도 LGBT(성소수자) 문화, 다양한 서브 컬처와 지역성 등이 스트리트 패션 부흥의 원인이 됐을 것이다.

결국 이런 것들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는 태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이 패션의 주된 가치관인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삶’을 깨뜨리는 모습은 동시대인들에게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트렌드가 된다면 조금 복잡해진다. 지금 하이 패션의 중심인 거리의 옷은 ‘내가 뭘 입든 상관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 패션은 동시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뉴스의 연예인 사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진다. ‘누가 뭘 입고 나왔냐’가 그 어느 시절보다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즉 히트 트렌드의 세계적인 몰입도도 그만큼 거대하다.

그 결과로 “내가 뭘 입든 상관하지 말자”는 옷을 “모두가 함께 입는” 모순된 상태가 만들어진다. 다들 비슷한 프린트의 티셔츠를 입고 비슷하게 못생기고 커다란 스니커즈를 신는다. 핫 트렌드를 이끄는 몇 가지 품목은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성이 사라진다.

사진 출처: vetements 인스타그램
사진 출처: vetements 인스타그램

모순적이지만 사실 이런 건 트렌드를 만드는 하이 패션이 흔히 하는 일이다. 예컨대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와 그런지(grunge) 문화가 넘실거릴 때, 마크 제이콥스는 기존의 문화를 배격하고 대체하려는 태도 그 자체를 가지고 그런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안티(anti) 패션의 물결 속에서 기존 패션에 대한 배격 자체를 또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안티 패션은 기존 패션의 일부로 흡수되고, 공장 노동자의 작업용 부츠와 할머니가 입었을 것 같은 커다란 드레스는 연예인과 유명 인사의 멋진 옷이 된다. 소비자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 이런 옷들을 따라서 산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 같지만 하이 패션 브랜드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 장인의 기술을 보전하고 패션의 미래를 제시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하위 문화의 태도를 끌어와 최고급 패션으로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현대의 고급 패션이 하는 일이다.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고가의 사치품을 사는 일 자체가 이미 이성과 논리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고급 패션의 트렌드는 평범한 일반인의 삶과는 관계가 없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하이 패션은 가시성이 크고 그 아래 수많은 일상복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패션은 최근의 티셔츠, 스니커즈 패션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달라진 시야를 갖게 되고, 선택지가 넓어지므로 “지금 입고 싶은 옷”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옷의 범위도 확장된다.

굳이 하이 패션의 트렌드를 두 발로 좇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태도에만 집중해도 충분하다. 지금의 트렌드는 “입고 싶은 옷을 입자”로 귀결된다. 그 옷이 주로 티셔츠와 후드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걸로 한정되는 건 아니다. 딱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든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입든 자신의 뜻이다. 다만 타이트한 드레스를 입기 위해 마른 몸을 가지라는 강요를 이제 그만하자는 거다. 건강하고 즐겁다면 그게 바로 존중받아야 할 가장 멋진 모습이다.

물론 그 옷을 입고 가는 곳에 대한 고려는 여전히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예절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송 뉴스에 단지 안경을 쓰고 등장했다고 화제가 된 여성 앵커의 모습에서 보듯, 이런 발걸음에는 생각보다 높은 벽이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직 좁다. 즉 위에서 말한 “입고 싶은 옷”의 폭을 넓히고, 별 의미 없이 존재하며 불편함을 주던 관행을 없애 가는 게 지금의 트렌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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