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5일 뉴욕 JFK공항.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삼아 이륙하려던 비행기를 돌려 세웠다. ‘땅콩 회항’ 사건이다. 사흘 뒤 조 부사장의 갑질이 보도되자 대한항공이 사과문을 내놓았다. “조 부사장의 문제 제기는 책임자로서 당연한 일이며, 사무장을 내리도록 한 최종 판단은 기장이 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면피성 사과문에 국민은 분노했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부친 조양호 회장이 뒤늦게 “저를 나무라 달라”고 머리를 숙였지만 딸의 구속을 막지는 못했다.
▦ 조 부사장 동생인 조현민 전무가 ‘물컵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피해 직원들에게 “광고를 잘 만들고 싶은 욕심에 냉정을 잃었다”는 메시지를 전한 뒤 휴가를 가 버렸다. 여론이 악화하자 급거 귀국했고 임직원에게 “경솔한 언행을 자제하지 못했다”고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 3년여 전 검찰 출석을 앞둔 언니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머리를 숙인 이후 두 번째 공식 사과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은 “뉴스 나오니 사과하는 건 본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2008년 5월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한 여성 기자가 “자동차 노동자들을 어떻게 도울 건가”라고 물었다. 그는 “잠깐만요, 스위티(sweetie)”라고 한 뒤 답을 주지 않았다. ‘스위티’는 애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쓰는 말. 성희롱이 될 수 있는 표현이었다. 논란이 일자 오바마는 즉각 기자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는 정중한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오바마 입니다. 두 가지 사과할 게 있어요. 하나는 답을 주겠다고 하고 주지 않은 것, 다른 하나는 스위티라는 표현을 쓴 것 입니다.”
▦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미안해’ 다음에 ‘하지만’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마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 보상 의사를 밝혀라.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용서를 청하라.”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이 말한 사과의 조건이다. 사과에는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오바마는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의 사과는 기자의 마음을 녹이고 대중의 마음을 되돌렸다. 조 전무는 ‘의도치 않은 잘못’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구차한 변명이나 핑계는 국민을 더 분노하게 만든다. 언니와 닮은 꼴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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