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파문이 총수 일가 전체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조 전무는 물론 총수 일가의 안하무인이 일상적이었다는 것인데, 갑질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에서 7년간 기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무는 보통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통과의례처럼 고성을 지른다고 들었다. (그래서 조 전무의) 음성 파일을 접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이젠 ‘직원들도 을의 입장에서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공개할 지경에 이르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조양호 회장과 그의 3남매(현아, 원태, 현민)를 거론하며 “총수 일가가 비행기를 타는 날이면 온 부서가 비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들은) 손님들이 탑승하고 있는데 지점장을 세워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거나 주변 상황을 개의치 않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또 “회사에선 회장님이 탄 비행기가 혹시 지연이 될까 봐 기장에게 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계속 메시지를 보낸다”면서 “대통령 전용기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고성이 터질지 모르니 이렇게 주의를 시키면서 총수 일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직원을 통제한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대한항공에서 10년 넘게 기장으로 일했던 B씨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사내에 통합 커뮤니케이션실이라는 부서가 있는데 일일이 직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찰해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으면 글을 내리라고 한다”면서 “예전에 회장 욕을 쓴 직원을 정직시켰는데, 그런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B씨는 “회장이 직접 고객 불만사항에 답글을 단다. 잘못을 한 직원이 있으면 ‘해병대 캠프에 보내라. 자비를 주지 말라’고 적는데 그러면 그 직원은 회사생활이 힘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너 일가가 거의 공산국가처럼 자기들이 원하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비난했다. 조 회장의 자녀 3명과 관련해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임직원들에게 반말을 한다거나 고함을 지르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고 B씨는 전했다. 그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오너 일가가 자꾸 반감을 사는 행동을 해서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갑질 방지법’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의 조은혜 노무사는 이날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을 통해 재벌 총수 일가 갑질의 원인을 특권의식으로 분석했다. 계열사를 형제, 자매, 아들, 딸에게 맡기면서 스스로 특권계층으로 자리를 잡았고, 자연스럽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특권의식을 갖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조 노무사는 “갑질 행위 자체를 규율할 수 있는 법이 없다”면서 “갑질을 한 당사자와 더불어 이를 사전에 관리하지 않은 회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조 전무는 지난달 광고 대행사 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물컵을 던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조 전무는 SNS와 대한항공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사과했으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찰은 조 전무의 행동이 폭행이나 업무 방해에 해당하는지 조사 중이다. 대한항공은 조 전무를 본사 대기 발령했으며 경찰 조사결과에 따라 회사 차원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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