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집 총리 횡령 ‘1MDB 스캔들’
중국 자본 영향력 우려도 한몫
“안정적 변화 이끌 인물로 적격”
집권을 하더라도 고령이어서 제대로 통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되는 마하티르 모하마드(93) 말레이시아 전 총리가 야권 총리 후보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말레이시아 안팎에서 일고 있는 레포르마시(Reformalsiㆍ개혁) 요구 때문이다. 나집 라작 총리와 현 집권당의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 깊다는 뜻이다.
대표 사례가 2015년 나집 라작 총리 개인 은행계좌로 수십억달러 공금이 들어간, 이른바 ‘1MDB’ 스캔들이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야권에 합류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다. 이 사건으로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고, 들불처럼 일던 나작 총리 퇴진 요구 목소리는 마하티르 전 총리를 다시 선거판으로 불러 들였다. 마하티르 자신이 수십년간 이끌던 정치조직이자 집권여당(BN)의 중추인 통일말레이시아국민조직(UMNO)에서 나와 그가 과거 ‘이교도’라고 부르던 이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 병원의 의사라고 소개한 일란다 빈 모하마드 이드자힘(36)씨는 “지난해 나라 경제가 5.7%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그 과실을 일반 국민들이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고, 안정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인물로 마하티르가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장교 출진으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살림 빈 카림(58)씨도 “10년 전 10링깃(약 2,700원)이면 살 수 있던 쌀(5㎏)을 이제 35링깃(약9,700원)을 줘야 한다”며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손님 대부분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내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 영향력에 대한 우려도 마하티르 전 총리를 불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말레이시아로 유입된 중국 자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친중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라집 총리를 겨냥한 것이지만, 말레이시아 내 중국 자본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는 15일 저녁 랑카위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서도 “스리랑카가 중국에 돈을 빌려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경제 성장은커녕 돌아온 것은 빚이었다”며 “돈을 갚지 못해 많은 땅을 빼앗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와 접한 남부 조호바루 출신 자이노딘 다로스(50)씨는 “고향에서는 중국의 엄청난 자본으로 ‘포레스트 시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 자본의 배만 불리는 이 사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중국 자본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달 9일 치러지는 말레이시아 총선에서는 222명의 하원의원과 13개주 가운데 12개에서 555명의 주 위원이 선출된다.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당이 총리를 배출한다. 여론조사는 국민전선(BN) 소속인 나집 총리가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지만, 마하티르 전 총리가 나선 야권의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도전에 박빙 승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쿠알라룸푸르ㆍ랑카위(말레이시아)=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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