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전환, 3년간 임금 80% 보장 VS 정규직 유지, 임금 60% 삭감.
다니던 직장이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회사가 두 가지 안을 제시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지난주 STX조선 노조는 후자를 택했다.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생산직 인건비 75% 포함 고정비 40% 감축)으로 “690여 생산직 정규직원 가운데 178명만 남기라”는 채권단의 압박에 노조는 역으로 ‘모두 정규직 신분은 유지하되 임금을 60% 삭감하겠다’고 답했고,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여 법정관리 계획을 철회했다.
노조는 원했던 고용보장의 대가로 많은 걸 희생했다. 향후 5년간 기본급을 5% 깎고, 600%이던 상여금은 절반만 받기로 했다. 매년 6개월간의 무급휴직도 감수하기로 했다. 회사와 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4,000만원 가량인 평균 연봉에서 60%를 삭감한 1,600만원만 받고 5년간 견뎌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연봉 1,600만원은 월급으로 치면 133만3,000원.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7,530원ㆍ월급 기준 157만3,77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측은 안타까워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선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것이다. 사측은 노조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마지막 카드로 ‘외주업체 직원으로의 전환을 받아들이면 3년간 일감을 주고, 임금도 80%는 맞춰 주겠다’고 제안했다. 회사가 외주업체에 지불하는 돈은 ‘운영비’로 잡혀, 채권단이 요구한 ‘고정비 감축’ 조건에선 자유롭다. 노조원에겐 3년간 연봉 3,200만원을 받으며 후일을 도모할 옵션이 있었던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하지만 처음부터 고용보장을 절대 원칙으로 내걸었던 노조가 스스로의 논리에 빠진 결과”라며 아쉬워했다.
STX조선 노조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노조 관계자는 “물론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3년 후엔’이란 두려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3년 후 조선업황이 살아나 다시 정규직으로 채용 되고, 지금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이란 불안감이 그들을 이런 최종 선택으로 이끈 셈이다. 그는 말했다. “지금의 직장을 떠나선 다들 달리 생계를 잇기 쉽지 않다”고.
일방적인 감원 압박은 그들을 더욱 뭉치게 했다. “올해 수주한 배가 16척이다. 이를 제때 인도하려면 적어도 2,000명은 추가로 필요하다. 회사나 채권단 얘기는 정규직 500명을 자르고, 비정규직 2,500명을 써서 배를 만들겠다는 의미인데 노조원들로선 도저히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STX조선이 벼랑에 몰려 있던 때, 비슷한 중견 조선사 대한조선의 회생 스토리가 한 언론에 등장했다. 대한조선은 2015년 법정관리 졸업 후,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경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예전부터 정규 생산직 비중을 10%로 낮춰 2016년 조선업계가 수주절벽에 질식 당할 때도 비정규 인력을 조절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대한조선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살아야 나도 산다”고 말했다지만, 90%에 달하는 비정규직 동료들이 겪으며 지낼 고용 불안감은 기사에 소개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얘기한다. 대책 없이 버틴다며 노조를 힐난하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익숙한 직장을 떠나서도 그럭저럭 살아갈 여력을 마련해주지 못한다. 비정규직이 여전히 불안과 차별의 대명사임에도, 우린 때론 너무 쉽게 ‘고용의 유연성’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해고는 살인이다’. 노조원들이 줄곧 외치는 구호엔 죽음의 공포가 서려있다. 실제 희망퇴직 대상이 된 한국GM 노동자 3명이 올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당장은 허울뿐인 일자리지만, 최저임금 이하 수입으로라도 지키겠다고 나선 STX조선 노조의 선택을 함부로 깎아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STX조선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원한다.
김용식 산업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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