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사법체계를 부인하면서 정치보복 프레임을 내세웠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 술 더 떠 자신의 구속기소를 ‘자유민주주의의 와해’로 규정했다. 이들의 모습에서 개발독재 시대의 뒤틀리고 왜곡된 반역사적ㆍ비민주적 국가관을 본다. 견제받지 않았던 권력의 필연적 귀결이다.
헌법 개정에서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 핵심 내용으로 부각되는 이유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자는 명제에 정치 주체들이 공감하지만, 여권과 야권의 개헌안이 절충을 찾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회 선출 총리가 내각을 책임지는 정부 형태는 권력구조 측면에서 타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적 요소의 불합리한 동거가 지금 대통령제의 문제라는 것은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어떠한 권력구조를 채택해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권력집단 내에서 상호견제가 가능한지 여부다. 두 전직 대통령들의 일탈은 집권세력 내부에서 견제받거나 감시받지 않은 ‘제왕적’ 권력에 기인한다. 권력 분산을 핵심 주제로 하는 개헌에서 이런 부분들은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시대착오적 역사관과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 등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고공 행진에 큰 역할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하려는 리더십도 높은 지지율의 원인이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집권세력 내부에서 내각과 여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예사롭지 않다. 각종 정치적 현안과 거대 이슈들에 대한 결정은 거의 전적으로 청와대의 몫이고 당의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결정은 찾기 어렵다. 청와대 독주, 미미한 집권당 존재, 무력한 내각은 집권세력 내부 균형의 균열을 의미한다. 외교, 안보, 경제 등 핵심 현안에서 청와대가 전면에 포진하면 당과 내각은 설 자리를 잃는다. 집권세력 내에서 각 구성 인자들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때 견제와 균형이 가능해진다.
박근혜 정부 때 권위주의적 국정운영 방식은 만기친람형 리더십과 수직적 당청 관계에서 비롯된 왜소한 집권당의 모습으로 구체화되었다. 집권세력의 구성 인자인 청와대와 내각, 여당 등 권력 내부의 견제는 작동하지 않았다. 권력 상호간 긴장이 사라지면 청와대 독주와 권력 집중은 화석처럼 굳어진다. 이는 권력구조나 정부형태의 변경과 다른 문제다.
청와대 참모가 개헌, 안보, 경제 등 핵심 국정 어젠다를 설정하는 차원을 넘어 집행과 추진에서 전면에 포진하는 모양새는 내각과 당의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나아가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여야의 첨예한 논란에 대해 집권당과 내각이 민심의 소재를 가감없이 전하는 모습도 찾기 어렵다.
입법ㆍ사법ㆍ행정의 상호견제 못지 않게 국정을 주도하는 당청, 당정, 당정청의 조화와 견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총체적 부조리는 한국 대통령제가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당청의 건강한 긴장과 조화부터 모색해야 한다. 집권당은 대통령 후보를 만든 정당이다. 당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이다.
국가 사법체계를 부정하고 권위주의 정권의 유령인 안보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재판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거의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가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 같은 이유는 집권 후 진정성있게 국민과 소통하고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노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종 현안과 이슈에 대해 권력 내부의 건전한 비판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시스템을 헌법 내에 담아내지 못하면 어떤 권력 구조든 권력 독주의 가능성은 항상 남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제도적으로 이를 원천봉쇄할 때 권력은 건강해지고 국민 동의와 지지에 기반할 수 있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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