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반도 두 자화상
개인 살아있지만 욕망 넘치는 南
혁명 내세우지만 ‘인간’은 없는 北
개인ㆍ사회 조화로운 제3 광장 추구
1970년대 미국서 3년 간의 생활
낯선 이국 땅서 ‘민족’을 재발견
냉전시대의 미국ㆍ소련 깊게 탐구
강대국 맞선 약소국의 소망 성찰
이념과 탈이념, 혼돈스러운 공존
이념은 여전히 세계를 독해하는 틀
미래엔 정치적 태도의 이념성보단
문제해결의 실용성이 더 중요해져
공화국(republic)이란 말의 기원을 이룬 라틴어는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다. 이 말은 그리스어 ‘폴리스(polis)’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가 노래하듯, 한 사람이 지배하는 곳은 폴리스가 아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설파하듯, 공동의 법과 이익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인 국가가 레스 퍼블리카, 다시 말해 공화국이다.
100년의 지성사를 다루는 이 글에서 공화국이란 말을 꺼낸 까닭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난 100년이 민주공화국을 향한 도도한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주인인 공화국이 다름 아닌 민주공화국이다. 두 번째는 한 뛰어난 소설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을 불러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의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최인훈(82) 소설 ‘광장’의 ‘작자(作者)의 말’이다. 1960년 잡지 ‘새벽’에 ‘광장’을 발표하면서 덧붙인 것이다. ‘구정권’은 이승만 정권을, ‘빛나는 4월’은 4월 혁명을, ‘새 공화국’은 제2공화국을 지칭한다. 최인훈은 광복 이후 황순원, 박경리, 이청준, 황석영, 조세희, 박완서, 조정래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다. ‘광장’은 소설 ‘화두’,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와 함께 최인훈의 대표작이다.
최인훈의 ‘광장’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최인훈의 삶을 반영한다.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은 광복 후 가족과 함께 원산으로 이사 왔다.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월남했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가 육군 통역장교를 지낸 다음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에서, 이후에는 남한에서 살아온 경험은 최인훈에게 두 사회를 비교할 기회를 안겨줬다. ‘광장’에서 철학도 이명준 역시 남과 북의 현실을 모두 체험하고, 그 이념적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명준은 두 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풍성하고 광장은 사멸했습니다. (...) 아무도 광장에서 오래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사멸한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명준이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이 만주의 저녁노을처럼 핏빛으로 타면서 혁명의 흥분 속에서 살고 있는 공화국이 아니었다. 더욱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컴뮤니스트들이 흥분이나 감격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설 속의 시간은 광복에서 한국전쟁까지다. 전쟁이 끝난 후 4월 혁명까지 계속된 남한과 북한의 현실을 매우 날카롭게 지적한 구절이다. 개인이 살아 있되 욕망만 넘치는 사회와 혁명을 앞세우지만 인간은 죽어 있는 사회, ‘광장 없는 밀실’(남한)과 ‘밀실 없는 광장’(북한)은 1950년대 한반도에 존재한 두 자화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아 있는 선택은 한반도가 아닌 제3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이명준은 자살을 감행한다. 이명준이 꿈꿨던 세상은 개인과 사회가 조화로운 ‘밀실 있는 광장’이다. 남한과 북한의 그 어디에도 이명준은 마음의 닻을 내릴 수 없었다.
광복을 이룬 지 15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0년 만에 작가 최인훈은 한반도에 드리워진 이념의 현실을 응시하고 성찰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 아래 최인훈이 추구한 것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좌와 우를 아우르는 중도적 자유주의였다. 이명준의 자살은 중도적 자유주의가 처한 비극을 상징한다.
최인훈이 말한 ‘빛나는 4월 혁명’이 요구한 것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구현이었다.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시민의 개인성과 국가의 공공성을 공존시키고 실현하려는 데 있다. 민주공화국에선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 ‘광장’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비로소 냉전분단체제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극복을 꿈꿀 수 있게 됐다.
남북조 시대의 예술가
‘광장’ 이후 작가 최인훈은 먼 길을 떠났다. ‘회색인’, ‘서유기’ 등 실존의 고뇌를 다룬 작품을 잇달아 내놓은 그는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3년간 체류한 다음 귀국해서 희곡 작가로 나섰다. 1994년 그는 ‘화두’를 발표해 소설가로 귀환했다.
‘화두’에서 최인훈은 이명준을 대신해 직접 주인공을 맡는다. 그리고 ‘광장’ 이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 ‘화두’의 화두는 민족의 발견이다. ‘화두’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낯선 미국 땅에서 이뤄지는 민족과의 조우다. 버지니아에서 우연히 만난 도지(道誌)에 실려 있는 ‘장수 잃은 용마의 울음’이라는 아기장수 설화는 최인훈의 마음을 벼락처럼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다.
평북 박천군의 한 가난한 집에서 겨드랑이 밑에 날갯죽지가 달린 아기가 태어난다. 부모는 가족이 겪게 될 불행을 염려해 아기장수를 죽이고 만다. 아기장수 설화는 지배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의 비원(悲願)을 담고 있다. 강대국에 맞서는 약소국의 소망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설화를 통해 최인훈은 민족을 재발견하고 결국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온다.
최인훈의 한 정체성인 ‘광장’의 주인공이 남과 북을 관찰했다면, 또 다른 정체성인 ‘화두’의 주인공은 이제 미국과 소련을 여행한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최인훈의 소설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최인훈이 뛰어난 작가인 까닭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남과 북의 분단시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를 모두 깊이 있게 성찰한다는 데 있다.
분단과 냉전은 지난 20세기 후반 우리 사회를 규정한 두 겹의 시대적 구속이다.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다루면서 최인훈을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예술가’라 부른 바 있다. 남북조 시대의 다른 이름이 분단 시대와 냉전 시대다. 냉전분단체제 아래서 좁게는 지식인, 넓게는 시민들의 선 자리와 갈 길을 치열하게 탐구한 최인훈은, 문학평론가 김현과 국문학자 김윤식이 ‘한국 문학사’에서 일찍이 주장했듯, ‘전후 최대의 작가’라 평가할 만하다.
이념의 미래
‘광장’ 1973년판 서문에서 최인훈은 말한다. “나는 12년 전, 이명준이란 잠수부를 상상의 공방에서 제작해서, 삶의 바다 속에 내려 보냈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광장’이 이데올로기 소설이라는 것을 작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이념은 한 개인 내지 집단의 사고 및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철학적 관념과 정치적 신념을 말한다. 보수가 안정과 시장, 성장을 중시한다면, 진보는 변화와 국가, 분배를 강조한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사이에는 이 둘을 절충하려는 중도가 존재한다.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한국전쟁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진보의 정치적 시민권은 불허됐다. 그 까닭은 최인훈도 주목한 냉전분단체제의 영향에 있었다.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에는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논쟁이 활발히 진행돼 왔다. 산업화 시대에 억압돼 있다가 개화한 만큼 이념 논쟁은 때때로 격렬한 양상을 띠었다. 이념의 전성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21세기 현재, 지구적 차원의 이념 구도는 탈이념의 경향을 보여준다. 보수가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고 진보가 보수의 정책을 차용하는 것은 많은 나라들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념은 여전히 세계를 독해하는 인식틀이자 정책을 선택하는 준거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의 경우에 뒤늦게 열린 만큼 이념의 시대는 정치사회를 위시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서 정치적 태도의 이념성보다는 문제 해결의 실용성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안정과 변화 중 무엇을 중시할 것인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세계화와 민족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서로 다른 이념적 입장이 맞서는 게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 역시 분명해 보인다. 이념과 탈이념의 혼돈스러운 공존이 이념의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이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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