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 정부에 확장적인 재정 정책과 사회 지출(복지 비용) 확대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킬 것을 주문했다. 환율보고서를 통한 정책 권고 형식이긴 하지만 지난해 230억달러에 달한 대미무역흑자를 이른 시일 안에 대폭 줄일 것을 사실상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전날 ‘미국의 주요 교역국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내수를 키우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 외부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확장적인 재정 정책은 대외불균형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특히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 사회 지출을 확대하는 게 소비 진작 효과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재무부는 6개월마다 주요 무역 대상국의 환율보고서를 작성한다.
미국은 지난해 4월과 10월 보고서에서도 재정 확대를 통한 내수 부양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외환 시장 개입 공개를 추진하는 시점에 또 다른 정책 수단인 재정 확대까지 다시 주문한 것은 사실상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는 압박이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상대국의 정부 지출 확대와 이를 통한 내수 부양으로 자국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건 외환시장 투명화보다 한발 더 나아간 요구”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사실상 대미 무역 흑자가 만족한 만큼 줄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해석했다.
미 재무부는 외환 시장 개입 공개에 대한 요구 수위도 높였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한국은 적시에 투명하게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외환 시장 개입의 투명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완곡히 표현했던 부분이 직접적 요구로 바뀐 것이다. 또 “지난해 11월과 올 1월 달러 대비 원화 가치 절상을 늦추기 위한 외환 시장 개입이 있었다”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특정해 우리 정부를 겨냥했다.
한편 미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진 않았다. 한국은 중국 일본 독일 스위스 인도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미 재무부는 ▦대미무역수지 흑자(200억달러 초과) ▦경상수지 흑자(GDP 대비 3% 초과) ▦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 등을 모두 충족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3개 중 대미 무역흑자(230억달러), 경상흑자(GDP의 5.1%) 등 2가지 요건만 해당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만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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