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어느덧 ‘반려동물’들은 때로는 다정한 친구, 때론 소중한 가족이 되어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토끼랑 산다’는 흔치 않은 반려동물 ‘토끼’를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토끼’에 대한 얘기를 6년 차 토끼 엄마가 전해드립니다.
출생지는 경기도의 한 토끼 농장. 엄마 젖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기 토끼는 자신이 태어난 농장을 영문도 모른 채 떠나 서울 광진구 한 대형 마트에서 새로운 엄마를 기다렸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은 아기 토끼가 갇힌 가로 90㎝, 세로 30㎝ 작은 유리 상자 안을 쳐다보며 “귀엽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기 토끼는 그럴수록 숨죽인 채 주인을 만나지 못해 훌쩍 어른이 돼 버린 다른 토끼 품을 파고들었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 그러나 토끼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관련 자료도 거의 없다. 지난해 10월에서야 토끼에 대한 전문 육아 상식을 다룬 책 ‘토끼’가 발간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토끼를 반려동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을까? 이 역시 2015년 9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자료가 유일하다. 한국갤럽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토끼를 키우는 사람은 0.3%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은 반려동물하면, 고양이나 강아지를 처음 생각한다. 이제는 6년 차 ‘토끼 엄마’지만 나 역시 토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머릿속 반려동물 지도에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전부였다.
준비 없이 시작된 아기 토끼와의 만남
2006년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로 진학한 후 10평이 채 되지 않는 원룸에 살던 나에게 반려동물 입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이 좁은 방 안에서 반려동물까지 같이 고생을 시킬 수 없다는 마음이 컸다.
토끼와의 인연은 예상하지 못한 사소한 계기로 시작됐다. 2013년 4월 7일 취업 문제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취업 문제로 골머리 앓던 나에게 별안간 친구가 토끼 얘기를 꺼냈다. 지하철역에서 한 할머니가 마구잡이로 늘어놓고 팔던 5,000원짜리 토끼가 불쌍해 최근 입양했단다. 친구는 토끼가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생각보다 반려동물의 ‘임무’를 착실히 잘 수행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친구의 토끼 예찬을 한참 동안 듣고 난 뒤 충동적으로 근처 대형 마트를 찾았다. 작은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던 아기 토끼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여있는 아기 토끼에게선 인간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기 토끼는 자신보다 몸짓이 3배 이상 큰 토끼를 연신 핥고 있었다. 유리 상자 곁에 딱 붙어 아기 토끼를 바라봤다. “못생겼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첫 인상은 그랬다. 양쪽 눈 색이 서로 다른 ‘오드 아이(odd-eye)’에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더치 토끼였다. 애완용 토끼의 한 품종인 더치 토끼 원산지는 네덜란드다. 몸무게는 약 2㎏으로 영리하고 순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이다.
“못생겼다”고 했지만, 다 커버린 토끼들 품을 파고들던 아기 토끼가 불쌍했다. 불쌍하다는 생각 하나로 나는 충동적으로 아기 토끼를 집에 데려왔다. 아기 토끼를 데려오는 데는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 3만 원. 한 생명이 내 품에 오는 데 필요한 돈은 고작 3만 원이었다. 마트에 돈만 지불했을 뿐 반려동물에 대한 기본 지식도 마음가짐도 없었다. 쇼핑을 하듯 손쉽게 한 생명을 손에 얻었는데, 이 생명이 앞으로 가져다 줄 내 삶의 변화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반려동물 토끼
지난해 10월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2010년부터 2017년 7월까지 동물보호센터에 버려진 유기 동물 56만 6,000마리를 분석한 결과 토끼가 2,550마리로 개, 고양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버려졌다. 대부분 집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다 토끼에 흥미를 잃거나 “숲에서 잘 살겠지”라는 마음으로 유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포털 네이버의 토끼 관련 카페에 따르면 토끼 반려인들은 주로 대형 마트나 길거리에서 토끼를 입양한다. 대형 마트의 경우 ‘동물 학대’ 문제로 토끼 판매를 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대형 마트들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한다’, ‘인기 좋은 코너’라는 이유로 토끼를 작은 상자 안에 넣어 전시한 후 판매한다. 일부 마트들은 동물 학대라는 비판을 의식해 전화로 주문을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토끼를 따로 판다. 길거리 판매의 경우 마트 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 작은 상자에 먹이도 없이 아기 토끼 수 십 마리를 넣어놓고 마구잡이로 판다. 가격은 2,000원에서 3만 원까지다. 가격 변동도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 10일 아기 토끼를 입양했던 대형 마트에 문의했더니, 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아기 토끼 가격은 여전히 3만 원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쉽게 얻은 토끼는 쓰레기를 버리듯 간단히 버려진다. 우리가 공원에서 보는 토끼들도 이 중 하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토끼들이 아니다. 누군가 유기한 것이다. 유기동물 입양과 실종동물 찾기 애플리케이션인 포인핸드에는 12일 기준 서울 지역에만 17마리의 토끼가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별반 다르지 않았던 나쁜 반려인
한 생명을 쇼핑하듯 데려온 나도 처음에는 그 존재가 낯설었다. 분명 선택을 해서 데려온 생명인데, 너무 가볍게 여겼다. 토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관련 정보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트 점원이 토끼를 담아줬던 하얀색 상자를 집 안 구석에 내려놓고 아기 토끼를 1시간 넘게 지켜봤다. 손을 쉽게 댈 수도 없었다. “집 안에 모기가 들어왔어도 지금보다는 친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기 토끼도 환경이 낯선지, 상자 밖에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나와 토끼는 서로를 경계하며 하루 그리고 이틀을 보냈다. 설상가상 내 몸에는 알레르기로 두드러기가 생기고,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쏟아졌다.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제서야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기 토끼가 나를 보는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준비 없이 시작된 만남에 마음을 다잡고 오랜 시간 토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졌다. 그곳에서 나는 ‘아기 토끼 키우는 법’을 찾았고, 그때 처음으로 내 작은 토끼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부를 때마다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나의 사심이 들어간 이름 ‘랄라’였다. ‘아기 토끼’에게 ‘랄라’라는 이름을 붙여준 순간부터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됐다. ‘가족’이 된 우리는 그렇게 5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글ㆍ사진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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