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한국 손잡고 풀뿌리 선거구 개혁 저지
"이런 갑질 보려고 촛불 들었나" 자괴감
민주, 반촛불 기득권 지방선거 책임 느껴야
문재인 정부가 순항 중이다. 김기식 파동 등에도 불구하고 고공행진하고 있는 지지율이 이를 보여준다. 박근혜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도덕적 파탄, 지지율을 까먹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자해, 이와 대조적인 정부의 개혁드라이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돌발 사태가 없는 한,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지방선거는 이미 촛불정신을 던져버린 ‘반촛불 선거’로 귀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풀뿌리인 기초의원 선거개혁안을 민주당이 한국당과 야합해 좌초시켰기 때문이다. 구의원 같은 기초의원은 현재 대부분 선거구당 2명을 뽑는다. 이는 거대 양당 독점 체제를 통해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도 선거구확정위원회는 선거구당 선출 의원을 3명 내지 4명으로 확대하는 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광역의회가 갖고 있는 바, 대부분 지역에서 민주당 광역의원들이 한국당과 야합해 개혁안을 좌초시켜 버렸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다. 서울시 기초의원 선거구는 지난 선거 때 2인 선거구가 111개, 3인이 48개였다. 이번에는 2인 선거구를 줄이는 대신 4인 선거구를 35개 만들고자 했지만 확정위 논의 과정에서 크게 줄어 2인 선거구 91개, 3인 53개, 4인 7개로 결정됐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7개의 4인 선거구마저도 모두 쪼개 2인 선거구로 만들고 3인 선거구 확대도 원위치로 돌려버렸다.
한국당의 ‘반개혁적’ 성격을 생각할 때 한국당이 이 같은 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촛불혁명에 빚지고, 촛불정신을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민주당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한국당과 담합해 갑질을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혁파하는 자기 개혁이 없는 ‘내로남불’식 개혁은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개혁 세력도 자신의 이익이 걸리면 대부분 개혁성을 상실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예외가 있다면, 스스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탈권위주의로 나간 노무현 전 대통령 정도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도 당대표 시절인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담합해 정치 개악을 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비민주적인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라는 선관위의 제안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거대 양당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비례대표를 축소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대에 마지못해 끌려간 측면이 많았다. 반면 이번 지방선거 제도 개혁 실패의 경우 민주당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당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개혁 저지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의 풀뿌리에서 이 같은 갑질 담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추미애 대표의 생각이 그런 것인가? 추 대표 의사에 반하여 지역 광역의원들이 문제인가? 당이 너무 ‘민주화’된 것이 문제인가?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확실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드라이브, 그리고 이 같은 문재인 정부에게 보내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갈채의 이면에는, 민주당과 한국당과의 추악한 ‘갑질 담합 풀뿌리정치’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는 촛불이 타오르자 “내가 이런 꼴 보려고 대통령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반촛불혁명’세력인 한국당과 손잡고 자기 이익 지키기에 혈안이 된 민주당 지방의원의 갑질 담합 정치를 보고 있자니 “이런 갑질이나 보려고 내가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절로 든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기 개혁이 동반되지 않은 개혁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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