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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세계를 향해 울부짖는 늑대 화웨이

입력
2018.04.14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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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에 창업한 화웨이에 늑대문화를 주입해 세계 최대 통신장비기업으로 키운 런정페이 회장. 화웨이 제공
43세에 창업한 화웨이에 늑대문화를 주입해 세계 최대 통신장비기업으로 키운 런정페이 회장. 화웨이 제공

1991년 중국 선전(深圳) 변두리 허름한 골목길의 3층짜리 임대건물에서 엔지니어 등 50여 명이 통신용 장비 개발에 매달렸다. 이들은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숙식을 건물에서 해결했다. 층마다 열 개 남짓씩 설치된 군용 야전침대가 잠자리였다.

그해 연말 통신용 디지털 프로그램 제어 교환기가 완성됐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 기업이자,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스마트폰 시장 3위로 성장한 화웨이(華爲)가 처음 개발한 제품이다. 모든 인력과 자금을 장비 연구개발(R&D)에 투입한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경영철학도 이때쯤 완성됐다.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 헌신과 인내를 바탕으로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불굴의 화웨이 정신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에 우뚝 솟은 화웨이 본사. 화웨이 제공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에 우뚝 솟은 화웨이 본사. 화웨이 제공

43세에 창업, 화웨이 글로벌 기업으로

런 회장은 1944년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안순(安順)시의 농촌 마을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친은 다민족 학교의 교사였다. 런 회장은 충칭건축공업대학에 진학했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이 터졌고 부친이 반동분자로 몰리며 가세가 기울었다. 이 시절 그는 상하이 노동자대학교에서 발행한 교과서로 혼자 전자공학을 독학했다.

대학 졸업 뒤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런 회장은 불혹(不惑)을 맞은 1984년 군복을 벗었다. 2015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그는 “1980년대 중국 군대 규모가 축소되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군에서 대량 해고됐다”며 “사회로 뛰어들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군인들은 시장경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런 회장은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개방과 개혁의 상징 선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처음엔 직원 20명 규모 국영기업에서 근무하다 정보기술(IT) 회사 설립이 허용된 1987년 화웨이를 창업했다. 43세의 초보 사장에 직원은 고작 5명, 자본금은 우리 돈으로 36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업종은 말이 통신업이지 홍콩에서 물건을 받아다 이윤을 붙여 납품하는 소위 브로커 수준이었다.

당시 중국 각지에서 우후죽순 창업한 400여 개의 통신업체 중 하나였던 화웨이는 1991년 통신장비 독자 개발을 계기로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런 회장은 연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쏟아 부었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자”는 창업 멤버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기술 개발에 힘쓰며 중국의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영업망을 넓혔다.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에릭슨 지멘스 노키아 루슨트 등 글로벌 통신기업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분쟁지역이나 자연환경이 열악한 곳을 집중 공략했다. 영하 50도의 혹한이 몰아치는 시베리아와 티베트의 고산지대에 네트워크를 깔았다. 2007년에는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산의 캠프와 등산로에도 화웨이 기지국을 세웠다.

화웨이 직원들은 2003년 알제리 대지진 때도 현장에서 네트워크를 지켰다. 2011년 리비아 내전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전란이나 자연재해 현장에서도 화웨이 직원들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이게 바로 런 회장이 주창하는 고객중심주의다. 고객에게 허리를 숙이고 굽실거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설비를 끝까지 책임지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게 화웨이의 방식이다. 2010년 런 회장은 한 강연에서 “고객이 없으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 힘든 지역이나 업무가 무서워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면 고객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창업한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이 거의 다 무너졌지만 기술이란 무기를 잘 가다듬어 고객을 향해 돌진한 화웨이는 중국 시장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강 에릭슨까지 꺾고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2010년 뒤늦게 뛰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채 5년도 되지 않아 샤오미를 끌어내리고 중국 시장 정상에 섰다. 통신장비 분야에서 끊임없는 R&D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화웨이는 단숨에 글로벌 톱3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현재 화웨이는 170개 이상의 국가에 진출해 매출의 7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글로벌 기업이고 런 회장은 중국의 수많은 예비 창업자들이 첫 번째로 손꼽는 롤모델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화웨이를 키운 ‘늑대문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글로벌 IT기업의 창업자들은 저마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정상에 올랐다. 화웨이의 성공 역시 런 회장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늑대문화가 화웨이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런 회장이 늑대문화를 처음 제시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글로벌 통신장비기업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1998년이다. 그는 ‘화웨이의 붉은 깃발은 언제까지 펄럭일 것인가’란 글을 통해 “기업이 발전하려면 늑대처럼 민감한 후각과 불굴의 진취성, 팀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창업 초기 신입사원에게 지급한 야전침대는 자신의 일을 끝마칠 때까지 죽을 각오로 노력한 선배들의 정신적 유산으로 통한다. 이 같은 문화를 만들어온 런 회장은 노력하지 않거나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직원은 가차 없이 도태시키는 냉정한 경영자다. 대신 노력해서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는 철저하게 보상한다. 런 회장은 1997년부터 최선을 다한 직원들에게 화웨이 주식을 나눠줬다.

지난해 매출 6,036억 위안(약 101조원)에 8조원의 순이익을 거둔 거대기업 화웨이는 아직 비상장사다. 런 회장의 지분은 약 1.4%에 불과하고, 대부분 지분은 직원들이 소유한 종업원지주제를 따르고 있다. 런 회장은 “앞으로 50년간 상장 계획은 없다”고 단언한다.

천문학적 투자금을 모을 수 있는 상장을 외면하는 것은 런 회장의 의지다. 돈방석에 앉으면 그동안 화웨이가 쌓아온 평정심을 잃고, 단기적인 이익을 좇는 자본시장에 휘둘리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장하지 않으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런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들이 24시간 내내 휴대폰을 켜놓는 것도 화웨이의 전통이다. 전화벨이 울리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주된 목적은 고객 응대인데, 화웨이 고문 우춘보(吳春波) 등의 공저 ‘화웨이의 위대한 늑대문화’에서 런 회장은 또 하나의 이유를 댔다. “좋은 소식은 나중에 들어도 되지만 나쁜 소식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직원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일이라면.”

화웨이가 전 세계에 운영 중인 14개 R&D센터 중 한 곳인 중국 상하이 리서치 센터 전경. 화웨이 제공
화웨이가 전 세계에 운영 중인 14개 R&D센터 중 한 곳인 중국 상하이 리서치 센터 전경. 화웨이 제공

미국의 장벽과 다가오는 변화

화웨이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스스로 쌓아 올린 기술력 덕분이다. 런 회장의 열성적인 R&D 투자는 ‘중국산=짝퉁’이란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지난해 화웨이가 R&D에 투입한 금액만 매출의 14.2%에 해당하는 897억위안(약 15조원)에 이른다.

화웨이는 전 세계에 14개의 R&D센터를 운영 중이고, 임직원의 40%에 해당하는 약 8만명이 R&D 분야에서 근무한다. 지난해 말까지 누적 11만2,849건의 특허를 출원해 7만4,307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이중 해외 출원 특허가 4만8,758건이다. 유럽특허청(EPO) 기준 지난해 등록한 특허는 2,389건으로 세계 1위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8의 부대행사 'MWC 글로모 어워즈’에서 화웨이는 ‘최고 모바일 네트워크 인프라스트럭쳐’ 등 8개 부문에서 수상, 3관왕에 그친 삼성전자를 앞섰다.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 삼성전자가 버티고 있는 국내에도 2002년 진출해 한화 롯데 대신증권 외환은행 등의 통신망을 구축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네트워크에도 화웨이 장비가 사용됐다.

이런 화웨이의 가장 큰 난적은 미국이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미국은 화웨이 스마트폰 진출을 막았고 통신장비에도 철퇴를 가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 초기부터 중국 인민해방군 연관설, 국영기업설 등에 시달린 화웨이는 “100% 민간기업인데, 모두 오해”라고 항변하지만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가열되고 있어 미국 진출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지난달 말 열린 화웨이 이사회에서 19년간 재직한 쑨야팡(孫亞芳) 이사장이 물러났고 런 회장은 자신의 부이사장직을 딸에게 넘겼다. 74세가 된 런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뗄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를 향해 울부짖는 늑대 화웨이 앞에는 정신적 지주 런 회장의 퇴장이란 중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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