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3일 청와대에서 전격 회동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 등 당면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개헌과 일자리 추경예산,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거취 등을 놓고 청와대와 한국당이 대립해 온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만남 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이다. 작금의 정국 교착 상황은 여야 수뇌부의 결단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 회동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홍 대표가 전한 회동 결과는 아쉽다. 문 대통령은 주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야당 지지를 요청했고, 홍 대표는 북의 위장평화 공세를 우려하며 ‘북의 리비아식 비핵화 관철’을 전제로 동의했다고 한다. 또 12일 청와대의 회동 제의에 정치 현안 전반을 의제로 다루자고 역제안했던 홍 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 발의 개헌안 철회와 김 원장 퇴진, 정치보복 수사 중단 등을 요구했고 문 대통령은 추경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고 한다. 회동은 상호 관심사를 말하고 듣는 수준에 그쳤고 적극적인 반박과 언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이 대화로 현안을 풀자는 이심전심의 이해가 오갔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김 원장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는 행위에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위법이 아니더라도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 비호에 급급한 청와대 참모나 민주당 지도부와 달리 문 대통령이 직접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살펴 엄정 처리 의지를 드러내 한국당이 영수회담에 나올 명분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
사실 김 원장의 로비성 외유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청와대의 대응 방식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않는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피감기관으로부터 많게는 3,000만원의 돈을 받아 20대 인턴 만 대동한 채 혼자 출장을 다녀온 일이 드문 일인데도 국회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임기 말 수억 원대 정치후원금을 기부금ㆍ퇴직금 등으로 ‘땡처리’ 하듯 유용했는데도 적법성 잣대만 들먹였다. 급기야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19대 여야의원 전체의 피감기관 후원 외유 실태까지 공개하는 '물타기' 무리수를 두더니 마침내 중앙선관위에 ‘인턴과 함께 간 해외출장이 적법하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까지 던졌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통해 “위법 여부를 떠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않는다’는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힌 것은 옳은 태도다. 지금 김 원장 의혹이 문제되는 것은 국회의원 혹은 참여연대 인사여서가 아니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금융감독기구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또 누구보다 강하게 공공기관의 외유성 출장을 비판해 왔고, 부정청탁을 금지한 김영란법을 발의한 그의 경력이 임명의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안다면 답은 명백하다. 신뢰는 그렇게 쌓아 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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