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해쳤습니다...전라도의 해도(海島, 섬)로 보내야 합니다.”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병조판서 유정현의 진언이 올라왔습니다. 여기서 귀양을 가는 인물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전라도 해도로 귀양을 가는 건 사람이 아닌 ‘코끼리’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코끼리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코끼리는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원의지가 조선 태종에게 바친 선물이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코끼리는 1년에 콩 수백 석을 먹어서 골칫덩어리였는데요. 그런 코끼리를 보고 공조판서 이우가 “뭐 저런 추한 몰골이 있냐”며 비웃고 침을 뱉자 화가 난(?) 코끼리는 이우를 밟아 죽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코끼리는 전라도의 장도(獐島)로 유배를 가게 되었죠. 장도는 현재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딸려있던 섬으로 현재는 육지가 된 곳입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전라 관찰사는 상소문을 올립니다. “코끼리가 좀 체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해지고...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상소문을 읽고 마음이 아팠던 태종은 코끼리를 유배지에서 다시 전라도의 육지로 돌아오게 했는데요.
그러나 여전히 엄청난 식성과 덩치를 자랑하는 코끼리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결국 전라, 충청, 경상 3도가 코끼리를 돌아가면서 사육하는 ‘순번 사육’을 하게 됐죠. 3도를 떠돌던 코끼리. 1421년(세종 3년) 또 사고를 치고 맙니다. 충남 공주에서 사육사가 코끼리 발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죠. 이에 충청도 관찰사는 다시 코끼리를 섬으로 유배 보내자는 상소를 올려 보냅니다. 상소를 들은 세종은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코끼리를 두라”고 명한 뒤 당부했습니다. “제발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다시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 이후의 코끼리와 관련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유독 동물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태종과 세종. 그러나 마음만으로 기르기엔 코끼리는 너무나도 낯선 동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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