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선
마커스 레디커 지음ㆍ박지순 옮김
갈무리 발행ㆍ488쪽ㆍ2만6 ,000원
근대의 합리성이란 곧 계산가능성이란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합리성의 극단적 형태는 무엇일까. 미국 역사학자가 노예무역 폐지 200년을 기념해 내놓은 이 책은 노예무역에서 극단적 합리성을 찾아낸다. 제목 그대로 바로 ‘노예선’이다. 아프리카 등에서 노예를 ‘조달’한다는 것은 최소 비용을 들여 최대 인원을 끌고 온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의 구석구석, 차곡차곡 잘 쌓아서 와야 한다. 이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구석구석, 차곡차곡’.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흑인 1,400만명 정도가 노예로 끌려갔으나, 조달 과정에서 500만명 정도가 사망했다. 배에서 죽으면 고스란히 내던져 대서양 상어밥이 됐다. ‘구석구석, 차곡차곡’이란 말의 의미다. 흑인들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선상반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해 배를 장악했으나 항해법을 몰라 방황했던 이야기, 아예 집단자살로 저항한 이야기도 있었다. 실패해도 흑인들은 ‘뱃동지’라 서로 부르며 끈끈한 연대를 이어갔고, 이 유대감은 흑인만의 문화로도 이어졌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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