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생각의 힘 발행ㆍ200쪽ㆍ1만2,800원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될 수 없다’는 말은 사실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같은 질문을 ‘반드시 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로 읽히게 하는 책이 있다. 제목에서부터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주장을 선연하게 펼친다.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억압할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시대를 읽지 못해 도태되지 말자. 함께 페미니스트가 되자. 잃을 것은 맨박스(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요, 얻을 것은 온 세계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최승범씨가 썼다. 그는 지난해 출간된 책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에도 저자로 참여했다. 이번 책에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필요한 이유뿐만 아니라, 자신이 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는지, 그로 인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앞으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가 적혀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우리 사회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맞벌이를 하면서 모든 가사 노동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지친 모습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남자를 페미니스트로 만드는 첫 번째 지점은 엄마의 인생에 죄책감을 느끼는 데 있다.” 물론 자신의 아내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삶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고 저자는 지속적으로 말한다.
궁극적으로 페미니즘은 남성의 삶도 자유롭게 한다. 남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가부장제가 타파되면 남성들은 더 많은 결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족쇄에서 해방될 것이고, 남자는 울면 안 된다거나 약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도 반기를 들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남성이 한다는 게 이 책의 가장 주효한 점이다. 단, 남성 페미니스트는 자신을 ‘협력자’로 위치시켜야 한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지만, 여성들에게 ‘맨스플레인’(남자가 여자에게 설명하려 드는 행동) 하면 안 된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일상에서 남성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학교 안에서 800명의 남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 마음이 통하는 교사들에게 페미니즘 책을 선물한다.
당장 모든 사람이 한 번에 달라질 수는 없다. 저자는 자신의 제자들이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보다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새로운 날은 남성이 바뀌는 만큼 빨리 올 것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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