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분야 모델이 마오쩌둥(毛澤東)이라면 그의 경제정책 모델은 덩샤오핑(鄧小平)이다. 시 주석은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랐고 덩샤오핑식 개방 확대로 중국 경제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폐쇄적 성격이 짙은 절대권력과 개방형 경제가 오롯이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일 시 주석의 전날 보아오(博鰲)포럼 개막연설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을 건설하고 금융ㆍ자동차 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발언은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했다. 남순강화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 무력진압 이후 개혁ㆍ개방 정책기조가 흔들리자 덩샤오핑이 직접 상하이(上海)와 선전(深圳) 등을 순시하며 개혁ㆍ개방 확대를 주문한 일을 말한다.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를 통해 계획경제로 회귀하자는 보수파의 압박을 돌파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 주석이 미국의 통상압박과 보호주의 공세를 뚫기 위해 강력한 개방 의지를 천명했다는 것이다.
사실 자유무역항 건설의 경우 시 주석이 개방 정책에서 덩샤오핑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측면도 있다. 자유무역항은 상품ㆍ자본ㆍ인력의 왕래가 상하이를 비롯한 자유무역시험구보다 훨씬 자유로운 특구로 조성될 예정이며, 시 주석이 특정 후보지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하이난(海南)성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다. 그런데 하이난은 덩샤오핑이 1988년 중국 최대 경제특구로 지정했지만 각종 부패와 부동산투기 광풍 등으로 실패한 전력이 있다. 시 주석이 북쪽 수도권에 슝안(雄安)신구를 건설하고 남중국해와 면한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건 개혁ㆍ개방에서 자신의 위상을 덩샤오핑 이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앞서 시 주석은 2013년 국가주석 취임 직후부터 반부패ㆍ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면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해왔고, 지난해 10월 제19차 공산당대회와 지난달 초 양회(兩會ㆍ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거치면서 ‘시(習)황제’라는 별칭이 자연스러울 만큼 1인 지배체제를 굳혔다. 정풍운동과 정적 제거를 반복하며 종신 절대권력자의 위치에 올랐던 마오쩌둥의 전철을 답습한 결과다. 덩샤오핑은 개혁ㆍ개방을 마오쩌둥의 과오를 극복하는 핵심동력으로 삼았는데, 시 주석은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北京)대의 한 교수는 “시 주석이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개방 정책을 확대하는 건 각기 나름의 근거가 있고 인민의 지지도 상당하지만 권력 집중과 개방 확대는 그 자체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1인 지배체제의 폐쇄적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개혁ㆍ개방에 따른 민심의 변화와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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