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에 이르는 조선인민군을 호령하고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장소로 거론되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비행 수단은 마땅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 전문가와 실제 북한을 방문한 여행자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미국 워싱턴이나 스웨덴ㆍ스위스 등지로 타고 갈 수 있는 장거리 비행기가 북한 내부에는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 수반 지위에 오른 이래 첫 해외 방문이었던 지난 3월 베이징 방문 때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기차를 탔다.
물론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비행기를 타는 것을 두려워했던 부친과 달리 종종 비행기를 탔다. 2014년 5월에 김 위원장이 전용기 ‘참매 1호’를 이용하는 장면이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처음 공개된 바 있다. 동일 기종인 ‘참매 2호’가 올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당시 김여정ㆍ김영남 등 북한대표단의 인천공항 입국에 이용됐다.
하지만 참매 1호의 기종은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항공설계국 일류신이 제작한 Il-62 여객기다. 1960년대 개발돼 1993년 생산이 중단된 구형으로, 대략 3,000마일(약 4,828㎞) 거리는 안정적 비행이 가능하지만 이를 넘는 장거리 비행은 부담스런 기체다. 또 북한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은 유엔 제재로 아프리카ㆍ유럽 노선 등이 끊겨 중국 일부 도시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근방 지역으로만 운항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보유한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너거나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정도의 능력이 없을 수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장거리 비행의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정비와 비행테스트가 거의 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북한 전문분석가 조지프 버뮤데즈는 “북한에 태평양을 건널 기체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매우 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김 위원장이 러시아나 중국 등 타국의 항공기를 빌리는 것도 가능한 방안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첩보 목적으로 도청장치를 설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국가 수반이 된 후 첫 비행기 여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내외에서 현대화한 정상국가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상징적 회담에 임하려면 최소한 자국 비행기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김 위원장이 자국 비행기를 타다가 급유나 정비가 필요해 중간 기착을 한다면 그 역시 이미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장거리 여행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스웨덴이나 한국이 태워줄 것이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는 민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 경제전문분석가 커티스 멜빈도 “해외 비행기를 빌리는 것은 자국민에게 보내고 싶은 신호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고려항공의 최신 여객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비행 전문 언론인 찰스 케네디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북한 고려항공이 보잉 757과 능력상 큰 차이가 없는 투폴레프 기종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고려항공의 최신 항공기들은 쿠웨이트나 유럽 등지로 북한 해외노동자를 실어 나른 바 있다. 케네디는 “평양발 Il-62가 로스앤젤레스까지 날아가는 것은 기존 비행반경을 벗어나는 일이지만, 항공기(정비)가 극도로 기초적인 기술임을 고려하면 북한이 비행기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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