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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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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진달래

입력
2018.04.10 16:4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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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진달래(꽃)가 산마다 붉게 피었다. 서민들과 너무나 친숙한 꽃이다. 봄이 오면 지천으로 피고, 한두 송이라면 지나칠 수 있어도 무리 지어 피면 누구나 발길을 멈추고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진달래는 우리의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게 한다. 하늘거리는 연분홍 꽃잎과 가늘고 긴 가지가 수줍은 시골 처녀나 새색시를 연상시킨다. 오랫동안 이 땅에 피고 지며 산골과 농촌의 삶과 이리저리 얽혀온 때문일 것이다. 척박한 산에서도 잘 자라고 쉽게 번진다. 강한 생명력이 민초들의 삶과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도회적 정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민속놀이 가운데 화전(花煎) 놀이라는 게 있다. 진달래 꽃이 만발한 삼짓날(음력 3월 3일)에 부녀자들이 화사한 봄볕 아래 진달래 꽃으로 부침개를 해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하루를 보냈다. 진달래 꽃에 찹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겨 먹기도 했다. 농사와 가사, 육아를 한꺼번에 책임져야 하는 바람에 남정네들보다도 한결 고달팠던 농촌 부녀자들을 달래는 놀이였다.

아이들이 즐기던 다른 ‘화전(花戰) 놀이’도 있다. 산이 진달래 꽃으로 붉게 물들면 아이들은 산으로 달려가 진달래 꽃을 따서 꽃잎은 한 움큼 입에 넣어 먹고, 길게 남은 꽃술(암술대)을 떼어 서로 그 힘을 겨루었다. 두 사람이 한 개씩, 꽃술을 십자형(十字形)으로 마주 걸어 꽃술 양쪽 끝을 잡고 당기면 어느 한 쪽의 꽃술이 먼저 끓어지면 지는 놀이다. 꽃술의 인장강도를 높인다며 침을 바르거나 콧김을 씌어 가며 승패를 가렸다.

진달래 꽃이 만발하면 사찰에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탑돌이를 하거나 꽃이 가득 달린 가지를 묶은 꽃다발로 친구나 연인을 살짝 때리며 축복하기도 했다.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다. 진달래 꽃이 두 번 피면 가을 날씨가 따뜻하고, 여러 겹으로 피면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진달래꽃은 예로부터 식용했다. ‘본초강목’에는 ‘아이들이 이 꽃을 먹는데 산미가 돌고 독이 없다’고 씌어 있으니 이 땅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진달래는 꽃과 잎, 줄기, 햇가지, 뿌리 등을 고루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지만 역시 꽃잎을 가장 널리 즐겼다. 진달래 꽃잎으로 빚은 술이 두견주(杜鵑酒)다. 지방마다 조금 다르지만, 백일주(酒)라 해서 담근 지 백일만에 마셨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고 ‘참꽃’ ‘꽃달래’ ‘온달래’라 불렸고, 두견화(杜鵑花)나 만산홍(滿山紅) 등의 멋진 별명도 많다. 진달래와 비슷하지만 유독 성분이 있어 먹을 수 없는 산철쭉은 ‘개꽃’이라고 불렸다.

한방에서는 진달래 꽃을 말린 것을 ‘두견화(杜鵑花)’라고 한다. 혈액순환 장애, 기침, 신경통, 염증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진달래꽃 삶은 물로 염색을 했고, 진달래 줄기로 만든 숯으로 승복을 염색하기도 했다.

우리 토종인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한라진달래, 한반도 전역에서 자생하는 가지와 잎에 털이 달린 털진달래, 잎이 타원형인 왕진달래, 꼬리진달래, 반질반질한 양면에 사마귀 돌기가 있는 반들진달래, 분홍색 대신 눈부시게 하얀 꽃이 피는 흰진달래 등 10여 종이 있다. 전국에 수많은 진달래 명소가 있고, 강화 고려산이나 부천 원미산, 서울 청계산의 진달래 능선 등 서울 도심 가까이서도 온 산에 불이 붙은 듯 만발한 진달래꽃을 지금 볼 수 있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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