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지원해왔던 자금을 SAIS에 직접 기부해 한국학 전임교수 신설을 추진한다. SAIS 측도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이르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에는 한국학 전임교수가 한반도 전문가 육성과 연구 활동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USKI 지원 중단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한국학 연구 위축 우려를 불식시키고 본격적인 한국학 연구의 플랫폼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10일 “한국학 전임교수 신설에 대해 SAIS와 상당한 수준에서 협의를 진행해왔다”며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어 SAIS 측은 펀딩이 이뤄지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우리 측 예산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늦어도 내년에는 SAIS가 전임 교수를 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불투명한 회계와 연구부실 논란에 휩싸인 USKI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대신 직접 기부 방식으로 한국학 육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한국학 전임교수 신설은 최근 논란이 커진 USKI 지원 중단 사태의 이면에 깔린 개혁 방안의 핵심 사안이었다. USKI가 지난 10여년간 20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을 지원 받았으나 한국학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할 전임교수조차 신설하지 못해 한국학 전문가 육성 및 연구성과 부실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USKI는 전문가 육성이 중요한 사업 목적임에도 오히려 한국학 및 한국어 지원 예산을 축소해왔다. 이 때문에 USKI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방기해왔다는 것이 한국학 연구자들의 불만이었다. USKI에 몸 담았던 한 직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SAIS를 졸업하면 미국 정책전문가들도 되고 기자도 되기에, 이 학교는 장기적으로 한반도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며 “하지만 전임교수도 없고 박사 프로그램도 없이 10년 이상을 보내왔다”고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SAIS에 “훌륭한 한국학 학자를 정식 교수로 임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USKI 개혁 방안에 대한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전임 교수가 향후 USKI 소장도 동시에 맡는 구상이 제시됐다. 전임 교수가 대학 부설 연구소장을 겸임해 교육과 연구 활동을 주도하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구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SAIS 측은 전임 교수 신설을 두고 협의를 지속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 방안에 대해 구재회 USKI 소장은 자신을 쫓아내려는 시도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구 소장이 연구 역량만 뒷받침됐다면 SAIS 전임 교수를 맡을 기회가 열려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개혁 방안이 실현되면 연구 역량이 부족한 구 소장이 자연스럽게 퇴출될 처지였기 때문에 셀프 ‘블랙리스트’란 프레임을 만들어 반발한 셈”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학 전임교수가 신설되면 현 USKI 인력 일부를 흡수해 전임교수를 중심으로 새로운 한국학 연구 체제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아울러 타 대학이나 연구소와의 공동연구 등 사업다각화도 병행하기로 했다. 한편,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은 이날 학술적 사안에 대한 “완전히 부적절한 간섭”을 거부한 뒤 지원 중단으로 USKI가 5월에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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