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5개교 뭉쳐 연합형 심화수업
실험은 우리학교, 문학은 옆학교
선택 수업 개설된 학교로 찾아가
“관심도 비슷해 학습 시너지 효과”
“암기식 벗어난 참여형 수업 매력”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들으면 되니까 당장 학원 가는 시간을 이 수업에 써도 아깝지 않아요.”
지난 2일 오후 6시 서울 관악구 구암고 과학실험실. 보통 학교라면 학생들이 모두 떠나 텅 비어 있어야 할 시간에 이곳이 구암고와 인근 당곡고, 삼성고, 수도여고, 신림고에서 온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이들 5개 학교는 ‘연합형 종합캠퍼스’를 꾸려 수업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수요가 적어 1개 학교가 구성하기 힘든 과목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매주 월요일에는 고2 학생 21명을 대상으로 구암고에서 ‘화학실험’ 수업이 진행된다.
실험실에 속속 도착한 학생들은 흰 가운을 챙겨 입고 자연스럽게 조를 꾸렸다. 20분 남짓 교사의 이론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2시간여 간 직접 묽은 염산과 마그네슘, 산소통 등으로 기체를 발생시키고 공식에 적용한 뒤 시험결과를 적어 냈다. ‘묽은염산(HCl)+마그네슘(Mg)=수소(H2)’ 같은 공식을 머리 속으로 외워 필기시험을 치르는 기존 수업과는 전혀 달랐다.
9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구암고 등이 도입한 ‘연합형 교육과정’은 교육부가 2022년 전국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하겠다는 고교학점제의 서울형 모델 중 하나다. 1개 학교 안에서 학생 수요에 따라 과목을 개설해 교실을 바꿔가며 수업하는 ‘개방형 교육과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학교 간 이동 수업으로 인프라를 공유해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넓힌 형태다. 올해는 11개 지역교육청에서 30개교가 참여하고 있는데, 동작관악권역에는 구암고의 화학실험 외에도 사회ㆍ과학과제연구(당곡고), 심화영어(삼성고), 글로벌리더십(수도여고), 현대문학감상(신림고) 등 과목이 개설돼 총 136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개방ㆍ연합형 캠퍼스’를 내년 서울 지역 모든 일반고에 적용할 예정이다.
연합형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진로ㆍ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화학실험 수업의 경우에도 1개 학교에서 4명 안팎의 학생을 뽑는 데 구암고에서만 12명이 지원했을 정도다. 삼성고에서 온 임시준(17)군은 “다니는 학교에는 없는 실험기구가 있기 때문에 체험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며 “특히 화학 관련 전공 진학을 꿈꾸는 친구들이 모였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공식을 달달 외우는 단순 암기식 수업과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구암고 백은새(17)양은 “실험에 실패하면 ‘왜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시간을 주기 때문에 글자로 읽고 외우는 수업과는 다르다”며 “진로에 따라 학교생활기록부에도 활동을 기록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교사들도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화학수업을 이끄는 구암고 조분순 교사는 “아이들이 관심 있는 과목을 직접 선택하기 때문에 수업 집중도가 정규 수업보다 월등하게 높다”고 전했다.
다만 개방ㆍ연합형 종합캠퍼스가 서울 지역 모든 일반고에 적용될 경우 교사 업무량이 증가하는 데다, 과목 다양성에 맞춘 인력 확보가 쉽지 많은 않다는 것은 넘어서야 할 과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간 온라인 협력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학생과 교사 모두가 만족하는 고교학점제 기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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