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매치 경기 모습./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승패만 생각하는 축구에서 ‘즐기는 축구’가 우선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영표(41) KBS 축구해설위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공격 축구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 같이 말하며 “팬들도 팀이 이기는 것만 바라는 팬심에서 벗어나 이기고 있더라도 공격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경기에 야유를 보낼 수 있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팬들의 환호와 야유가 적절할 때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틀린 말 하나 없다. 승패만 생각하면 크게 이기고 있는 팀은 ‘적당히’를 생각하게 되고 상대팀은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상황에 따라 ‘지지 않는 축구’, 즉 무승부에 대한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기는 ‘재미’가 없어진다.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KEB하나은행 K리그1 통산 84번째 슈퍼매치에서 양팀은 ‘지지 않는 축구’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두 팀은 공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0-0으로 비겼다. 당연히 현장에선 거센 야유가 쏟아졌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응원했던 관중 1만3,122명은 아무런 희열을 느끼지 못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이 연고지와 팀 명을 바꾼 2004년 5월 이후 최소 관중이었다. 종전 기록은 2005년 6월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슈퍼매치 때의 1만9,385명이었다. 축구협회(FA)컵, 리그컵 경기로 범위를 넓혀도 역대 최소였다. 이전까진 2004년 8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하우젠컵에서 나온 1만4,823명이 최소 관중 기록이었다.
팬들은 비싼 돈을 주고 살 선수 유니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FC서울에서 뛰다가 올 시즌 수원으로 이적한 데얀(37)을 제외하면 응원할 스타도 많지 않다. 염기훈(35ㆍ수원)과 박주영(33ㆍ서울)도 성적이 예전만 못하다.
스타가 없는 축구, 승패만 생각하는 축구는 재미가 떨어진다. 서울과 수원이 ‘호화 군단’이라는 말도 옛날 얘기다.
슈퍼매치의 역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은 K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김호(74) 감독과 조광래(64) 코치가 불화로 결별했다. 1999년 조 코치가 서울의 전신 안양 LG 사령탑을 맡으면서 두 팀은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선수였던 서정원(48)은 프랑스 프로축구 스트라스부르에 진출했다가 국내로 유턴했는데 1999년 친정인 안양이 아닌 수원과 계약하면서 양 팀의 관계는 더 악화됐다.
2004년 안양이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면서 골은 더 깊어졌다. 슈퍼매치는 2007년 틀이 완성됐다. 당시 수원을 이끌던 차범근(65) 감독과 서울에 부임한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66) 감독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그 무렵 서울에는 데얀, 박주영, 기성용(29), 이청용(30), 이을용(43)이 포진했고 수원에는 이운재(45), 송종국(39), 이정수(38), 에두(37) 등 최고 선수들이 속했다. 그 해 4월 8일 슈퍼매치 때는 역대 최다 관중(5만5,397명)이 몰렸다.
안양 ‘원클럽맨’이었던 최용수(45) 감독은 2011년 서울 지휘봉을 잡았다. 서정원 감독 또한 2012년 말 수원 감독직에 오르면서 대립 구도는 깨지지 않았다. 이후 최 감독의 바통을 황선홍(50) 감독이 이으면서 슈퍼매치의 명맥도 지속됐지만, 올 시즌부터는 그 구도가 급격히 떨어진 모양새다.
8일 선발 공격수로 나선 고요한(30ㆍ서울)이나 유주안(20ㆍ수원)은 사실 축구팬이 아니라면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과거 슈퍼매치 스쿼드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축구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스타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K리그가 셀링 리그로 전락한 것도 한 몫 했다. K리그에서 뜬 선수들은 2~3년 만에 일본 J리그나 유럽 빅리그 진출을 모색하곤 한다. 처우나 환경이 떨어지다 보니 선수들이 유출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비교적 최근이었던 2016년 6월 18일. 그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슈퍼매치는 다시 떠올리고 싶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경기장에 모인 4만7,899명(당시 역대 9위)은 하프타임 때 가수 전인권(64)의 곡 ‘걱정 말아요 그대’에 맞춰 일제히 휴대폰 라이트를 흔들었다. 경기는 1-1 무승부였지만, 슈퍼매치다운 열기는 그라운드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빈티지 와인처럼 해가 갈수록 숙성돼야 할 슈퍼매치의 스토리와 재미는 오히려 급격히 고갈되고 있다. K리그는 숨이 끊어져가는 슈퍼매치에 서둘러 산소호흡기라도 달아야 할 판이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한국스포츠경제 관련기사]
[삼성바이오를 가다①]'셀트리온 주주 비판 신경 안 써, 제4공장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