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지금까지 했던 키 재기 중 가장 떨린 순간이었다.”
올 시즌 전주 KCC에서 뛰었던 찰스 로드(33)가 6일 오후 2시 서울 논현동 KBL 센터를 찾아 가슴 졸인 신장 측정을 받은 뒤 털어놓은 말이다. KBL이 다음 시즌부터 장신 200㎝, 단신 186㎝ 이하로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규정을 바꾸면서 생긴 웃지 못할 풍경이다.
공식 프로필에 200.1㎝로 등록했던 로드는 어떻게든 200㎝ 이하로 자신의 키를 줄여야 했다. 발바닥을 깎아낼 수 없으니 최대한 몸을 웅크리는 수밖에 없다. KBL 직원은 로드의 몸을 두들겨가며 “허리를 세우라” “가슴을 더 펴라” 계속해 주문했고, 로드는 “다 폈다”며 버텼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흐르며 신장 측정은 한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로드의 키는 199.2㎝로 측정됐고 기준점을 통과했다. 2018~19시즌에도 한국프로농구 코트를 누빌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프로필 보다) 키가 작아진 로드는 환호했다. 그는 마치 결승골을 넣어 팀 승리를 이끈 것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로드는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못 뛰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결과가 잘 나와 행복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로드보다 앞서 안양 KGC인삼공사의 데이비드 사이먼(36)이 지난 2일 신장 측정을 받았지만 203㎝의 키를 200㎝ 이하로 줄이지 못했다. 그는 최종 202.1㎝ 측정 결과를 받아 들어 결국 KBL 무대와 작별했다.
‘키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1㎝는 왔다 갔다 한다’는 말에 로드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지만 실제 신장 측정 기구에 오르고,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측정 과정에서 KBL 직원이 불량한 자세를 지적하며 측정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할 때는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2010년 부산 KT 유니폼을 입고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로드는 7시즌 동안 인천 전자랜드, KGC인삼공사, 울산 현대모비스를 거쳐 이번 시즌 KCC까지 총 345경기를 뛰었다. 역대 통산 블록슛은 561개로 DB 김주성(1,037개)에 이어 2위, 리바운드는 2,838개로 10위에 올라있다. 로드는 “사이먼과 함께 뛰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앞으로 경기 속도가 빨라지고 박진감 넘치는 농구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을 비롯한 외신들까지 KBL의 200㎝ 이하 신장 제한을 꼬집는 보도를 하고, 팬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는 등 반발이 거세자 이성훈 KBL 사무총장이 로드의 신장 측정 이후 규정의 취지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이성훈 총장은 “가장 큰 목적은 국내선수 보호”라며 “구단의 유불리를 떠나 전체 리그의 경쟁력과 품질을 우선시하다 보니 현장의 의견을 다 수용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또 “KBL 출범 이래 22시즌 중 15시즌에 신장 제한을 실시했는데, 신장 제한이 폐지된 시기에 경기 속도와 득점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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