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원장 “금융권 채용비리 후진문화 탓”
금감원 잇단 채용비리 연루엔 자기반성 없어
“금융권에 남녀를 차별해 고용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건 문화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5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최근 채용비리가 잇따른 금융권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취임 이후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던 김 원장이 금융권 채용비리에 대해선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언론을 불러 정 장관과의 면담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선망의 일자리인 금융권에서 벌어진 작태에 취업준비생들이 느낄 박탈감을 생각한다면 금감원의 이러한 행보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찜찜합니다. 금감원이 신임 원장의 채용비리 척결 의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정작 자기 기관의 치부에 대해선 아무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는 까닭입니다.
금감원은 최근 특별검사단까지 꾸려 하나은행 채용비리를 검사해 32건의 비리 정황을 적발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인 16건은 청탁으로 합격한 사례였는데요, 추천인에는 하나은행 전현직 임원은 물론이고 청와대, 국회와 같은 ‘권력 기관’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해 주목을 덜 받았지만, 누군가의 추천으로 서류와 실무면접을 통과하는 특혜를 받은 지원자가 2명 있었습니다. 이들을 각각 추천한 이가 다름 아닌 금감원 직원들입니다. 금감원은 이들이 누군지 알아내려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금감원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건 처음이 아닙니다. 행장까지 재판에 넘겨진 지난해 우리은행 채용비리 때도 금감원 직원들은 추천인 명단에 버젓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자료를 보면 ‘금감원 임원 ○○○’와 ‘금감원’이 각각 요청해 2명을 채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민간 금융기관 입장에선 직접 대면할 일이 많은 금감원이 정부 부처를 능가하는 권력기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금감원은 자체 직원 채용 과정에서 일부 고위 간부들이 청탁을 받고 채용 기준을 임의로 변경하는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지난해 9월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금감원은 이후 채용 청탁을 원천 차단하겠다며 모든 전형에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하고 퇴직 임원과 만났을 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상세히 보고하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정작 금감원 직원이 민간 기관에 청탁하는 것을 막는 방안을 전혀 내놓지 않았습니다.
시중은행들은 금감원의 고강도 채용비리 검사에 몸을 낮추면서도 속으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라고 꼬집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채용 청탁을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은행만 적폐로 몰고 있다는 것이죠. 금감원의 채용비리 척결 의지가 폭넓은 지지를 얻으려면 과거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민간 금융사에 대한 청탁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대책부터 내놓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