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로 수사 대상에 오른 고위공직자들이 무턱대고 부인하는 모습을 보면 의아스럽지만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괘씸죄를 적용해 가중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양형 기준을 타성적으로 적용해 가중처벌의 정도가 그리 높지 않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침해한다는 주장 등을 내세우지만 실은 우리 특유의 관용적 정서가 크게 작용한다. 이런 점을 노려 성격이 강하고 배짱 좋은 사람일수록 부인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증거물과 증인이 넘치는데도 혐의 일체를 부인한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고,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추론과 상상에 기인해 기소됐다”고 반발했다. 지난해 10월 구속영장 연장 후에는 재판까지 거부하고 있다. 6일 열리는 1심 선고에도 나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 판사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하는 피고인에게는 인상이 크게 나빠진다고 한다. 범행을 부인하고 재판까지 무력화하는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 1심에서 징역 30년을 구형 받은 박 전 대통령의 선고 형량이 관심이다. 2009년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국민의 법 감정과 양형 간의 괴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유기징역 상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그 후 징역 20년 이상의 형은 몇 차례 선고됐으나 모두 5대 강력범죄에 해당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 20년 이상의 실형이 선고되면 ‘비(非)강력범죄’로는 최고형이 되는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공범관계인 최순실씨에게 징역 20년 형이 선고된 점을 들어 이보다 무거운 25년 안팎의 형이 선고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 이뿐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이 막 시작된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공천개입 선거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뇌물 액수 역시 특가법 적용에 해당되는 규모여서 이것만으로도 10년부터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두 건의 재판 형량이 합해지면 징역형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처벌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올해 66세인 박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이지만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책무를 방기한 죄가 너무나 크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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