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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중부담-중복지’ 국가

입력
2018.04.05 14: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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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는 몰랐다. 전쟁이 발발할 것 같았던 일촉즉발의 위기는 자취를 감추고, 남북한은 물론 주변 국가들 간의 대화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일본의 아베조차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하는 상황이고 보면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긋지긋한 분단의 겨울이 가고, 평화의 봄이 올지도 모른다.

분단이 성장 제일주의와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지켜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를 정당화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단이 평화로 바뀌는 거대한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평등한 사회를 위한 복지 확대를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는 ‘종북과 반공’ 논리에 갇힌 한국 사회를 복지국가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복지국가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선거 시기가 되면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합의한 적이 없다. 다만 분명한 진실은 우리가 만들어갈 복지국가는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합의에 근거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특정 정치세력의 힘만으로 이룰 수 없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면 지금 당장 한국에서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자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여야와 좌우, 노동과 자본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런 고려에서 한국 사회에서 좌우, 여야, 노동과 자본이 합의할 수 있는 복지모델은 중부담-중복지다.

실제로 지난 대선 과정을 보면 중부담-중복지는 진보정당인 정의당,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국민의당,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이 주장했던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이었다. 또한 일부 보수언론도 중부담-중복지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그러나 중부담-중복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다만 한국 복지국가의 수준이 적어도 OECD 평균 수준의 국민 부담과 복지 지출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부담-중복지의 맹점은 복지국가를 단순히 복지지출이라는 양적 문제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몇 차례 언급한 것이지만 2016년 기준으로 그리스와 스웨덴의 GDP 대비 사회지출은 각각 27.0%와 27.1%로 거의 같다. 그러나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국가로 불평등과 빈곤이 최소화된 사회인 반면, 그리스는 스웨덴과 유사한 복지지출을 하고도 OECD 국가 중 빈곤과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사회 중 하나다.

중부담-중복지가 한국 복지국가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복지지출의 양이 아니라 중부담-중복지 수준의 지출을 통해 한국 복지국가가 그리고 있는 사회의 질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공적 복지지출을 OECD 평균 수준에 근접한 GDP 대비 2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넘어 20%를 어떻게 지출할 것이며, 20%의 지출을 통해 불평등과 빈곤을 어떻게 완화할지 분명하고 단계적 경로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청년 일자리 대책과 같은 한시적 현금지원을 늘리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증세를 포함한 재원 마련 방안은 사회적 공론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에게 중부담-중복지는 한국 복지국가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진보에게 중부담-중복지는 더 큰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이행단계가 될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른 꿈을 꾸지만, 바로 중부담-중복지가 갖고 있는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당분간 진보와 보수, 자본과 노동은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단의 봄이 민생의 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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