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 저 난리블루스일까. 딱딱딱, 딱딱, 딱딱딱딱… 하도 시끄러워 대문을 열고 나가 들어보니, 역시 부리로 나무구멍을 파는 딱따구리 소리.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곤 하는 오색딱따구리일 터. 소리가 나는 곳은 천주교 공소가 있는 뒷산자락 부근 같다. 며칠째 극성을 부리던 미세먼지도 사라진 파란 하늘. 나는 탁발승의 목탁소리를 흉내 내는 딱따구리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공소 부근까지 왔는데, 작은 대바구니를 겨드랑이에 낀 마을 부녀회장이 매화나무 밑에 서서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아니, 회장님, 여기서 뭘 그리 쳐다보세요? 매화 꽃눈이 요로코롬 톡톡 벌어지고 있잖아요. 모진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우는 걸 보니, 정말 장하다는 생각이 들지 뭐여유!
술도 잘 드시고, 고스톱도 잘 치시며, 욕쟁이 헐멈으로 소문이 자자한 부녀회장의 말씀치곤 평소와 달리 달보드레하다. 근데 고선상은 어델 가시러 이리 나오셨우. 나는 공소 뒤편 산자락을 가리키며 대꾸한다. 저 딱딱거리는 소리 들리죠? 웬 스님이 오셔서 목탁을 두드리시나, 좀 보려구요. 부녀회장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이내 내 말귀를 알아들은 듯 매화나무에서 눈길을 돌려 뒷산자락을 올려다보며 농으로 받으신다. 스님께서 꽤나 허기지신 모양이네유! 허허, 그러게유. 우리는 어쩌면 별 일 아닌 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하루하루의 삶이 보릿고개를 넘던 가난한 농투산이들처럼 힘든 나날이지만, 그래도 시골에 사는 보람은 하늘을 우러르며 산다는 것. 파릇파릇한 봄을 밀고 나오는 나무들의 꽃눈을 우러르고, 논밭두렁에 배밀이하듯 싹을 틔우는 풀들을 우러르고, 봄의 전령인 따사로운 햇살을 우러르고, 이 모든 창조물 배후에서 일하시는 창조주를 우러르며 오늘도 봄날을 건너고 있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맘, 경외의 맘으로 이 짧은 봄날을 건너고 있다. 내 영혼의 스승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경외’의 소중함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지.
“당신이 놀라는 감각을 잃어버리는 때, 헛된 자만심으로 인해 당신이 우러러보는 능력을 위축시키는 때, 우주는 당신 앞에 장터가 되고 만다. 경외의 상실이야말로 바르게 보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가장 위대한 통찰은 경외의 순간에 이루어진다.”(루스 마커스, ‘헤셸의 슬기로운 말들’)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우주는 장터가 되고 만다? 그렇다. 옛 사람들은 공경하기 위해 배웠다는데,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써먹기 위해 배운다. 정보와 지식의 바다를 헤엄치며 우리는 오로지 ‘써먹기’ 위한 것을 찾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이 자본만능의 시대에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지식은 곧 폐기 처분되는 세상. 하지만 맑고 향기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 없이 인류가 존속할 수 있을까. 우주를 장터로 전락시키는 천박한 인식으로 우리는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을 담보할 수 있을까.
부녀회장이랑 수다를 떨다 헤어져 공소 뒷산으로 올라가니, 목탁을 두드리던 탁발승은 종적이 없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산에는 생강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어린 잎눈 꽃눈을 피우고 있었다. 숲을 벗어나 가파른 언덕을 넘자 나지막한 무덤 몇 기가 나타났다. 잔디가 잘 살지 않아 황토가 드러나 있는 무덤가엔 뱀밥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린 생식 줄기 끝에 달리는 포자낭수가 뱀 머리를 닮아 ‘뱀밥’이라 불리는데, 다른 이름으론 쇠뜨기라고 한다. 어떤 식물보다 생명력이 강한, 봄의 전령인 쇠뜨기는 아직 푸른 잎이 돋지 않은 뱀밥의 형태로 하늘을 우러러 피어나고 있었다. 신이 주신 경외의 유전자를 온새미로 간직한 것들, 갸륵한지고, 갸륵한지고!
고진하 목사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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