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여윳돈이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자 동원 가능한 여유자금의 상당 부분을 주택을 사는 데에 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일 한국은행의 ‘2017년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비영리단체 포함)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50조9,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는 전년(69조9,000억원)보다 19조원이나 줄어든 것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이후 최저치다. 기존 최저치는 2010년 59조3,000억원이었다. 가계 순자금운용은 가계가 예금ㆍ투자 등 금융상품을 통해 굴린 돈(자금운용)에서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자금조달)을 뺀 수치로, 흔히 가계 여유자금으로 해석된다.
가계 순자금운용 규모는 2016년 23조7,000억원 줄어든 데 이어 2년째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기도 하다. 한은은 가계의 주택 구입, 특히 새로 지어진 주택 구매가 늘어나면서 가계가 보유해 온 자금을 집값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새로 건축된 주거용 건물의 환산액이 2015년 74조7,000억원에서 2016년 90조5,000억원, 지난해 107조3,00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박동준 자금순환팀장은 “재작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분양 물량이 증가하면서 가계의 신규 주택 구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금융자산을 실물(부동산)자산에 투자하는 모습은 지난 수년 간 가계가 보여준 여윳돈 운용 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가계 순자금운용 규모는 2010년 이후 매년 증가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불안과 고령화 시대의 노후자금 비축을 위한 소비 절감이 맞물린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가계 저축률은 2011년 3.4%에서 2015년 8.1%까지 올랐다. 그러나 가계가 여유자금을 줄여 투자에 나서면서 지난해 저축률은 7.6%로 떨어졌다. 다만 최근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가 식을 조짐을 보이면서 가계가 도로 여유자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살림을 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지난해 말 기준 가계 금융자산은 전년보다 8.2% 늘어난 3,667조6,140억원, 금융부채는 7.8% 늘어난 1,687조3,350억원이었다. 금융자산 중에선 주식 및 펀드가 107조7,500억원 늘어난 반면, 채권은 9조원 줄었다. 지난해 증시는 호황을 보인 반면, 채권은 저금리 탓에 수익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은 2.17배로, 전년(2.16배)보다 소폭 개선됐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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