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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트렌드 Now] 범죄자 잡는 첨단 과학, 이집트 미라 정체를 밝히다

입력
2018.04.03 18:0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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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FBI 법의학팀 DNA 조사

시신 신원 100년 난제 풀어 내

미 연방수사국이 정체를 밝혀낸 고대 이집트의 미라 모습. 뉴욕타임스 캡처
미 연방수사국이 정체를 밝혀낸 고대 이집트의 미라 모습. 뉴욕타임스 캡처

미국 FBI(연방수사국)의 활동 영역이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고고학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범죄자를 잡는 데 요긴하게 쓰였던 유전자(DNA) 감식 기술을 활용하면서다. 뉴욕타임스는 2일(현지시간) 미제 사건의 범죄자뿐 아니라 4,000년 전 죽은 이집트 왕조의 정체성을 복원해내는 데 기여한 FBI의 활약상을 전했다. 미라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는 꼬박 100년이 걸렸다.

사건은 1915년 나일강 동쪽 고대 이집트 왕조들의 왕과 귀족들이 묻힌 엘베르샤 10A구역에서 발견된 머리만 있는 미라에서 시작된다. 도굴꾼들이 무덤을 약탈하면서 흔적을 없애려고 불을 지르는 바람에 머리만 남은 것으로 추정됐다. 두상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으로 옮겨졌고, 2009년까지는 창고 속에서 모두에게 잊혀졌다. 그러나 2009년 전시회에 우연히 등장한 뒤 기괴한 모습 탓에 큰 흥행을 거뒀다.

공개된 미라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붕대로 이마를 싸 맨 채, 나뭇잎 문양 눈썹이 새겨져 특히 주목 받았다.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자, 고고학자들은 미라의 주인공이 누군지 밝혀내야 했다.

많은 학자들이 매달려 이집트 12대 왕조의 권력자인 ‘제흐티나크트’의 무덤에서 나왔다는 것까지는 밝혀냈으나, 제흐티나크트 자신인지 혹은 함께 묻힌 부인인지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4,000년 전 사막의 기후를 견뎌낸 미라의 두상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기관들이 CT촬영과 치아 검사에 매달렸지만 허사였다.

모두가 포기하려던 2016년 FBI가 해결사로 등장했다. 미술관 의뢰를 받은 FBI 소속 법 의학팀이 ‘유전자증폭기술’(PCR)로 도전한 것이다. PCR은 극소량 DNA를 배양시켜 유전자 지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먼저 미라 치아의 중심부에 구멍을 뚫어 추출한 소량의 가루들을 모아 불순물들을 걸러낸 뒤 수백만 배 증폭시켜 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DNA 조각 퍼즐로, 염색체의 양과 비율 등을 슈퍼컴퓨터가 보유한 방대한 지놈 데이터와 비교 분석한 결과, 몸통 없는 미라는 남성이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FBI 법의학팀은 고대 이집트인의 계통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도 확인했다. 제흐티나크트의 모계 쪽이 유럽과 아랍으로 뻗어나간 유라시아인이라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학 연구소도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현대 이집트인과 달리 고대 이집트인들은 중동 및 유럽인의 유전자 표본에 가깝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개발된 첨단 과학이 멸종된 인류의 성별부터, 가계도까지 알려주는 시간여행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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