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정책적 고려에 의해
금융감독 원칙 왜곡돼선 안 돼”
금융부 신설해 금융위 기능 흡수
감독기능은 금감원으로 통합 안
6월 선거 이후 논의 본격화 전망
금감원이 개편안 논의 주도
금융위와 갈등 불가피할 듯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자마자 금융감독 체계 개편 문제를 꺼내 들었다. 금감원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위의 금융기관 감독 기능을 금감원으로 통합하는 것이 개편론의 핵심이다. 현 정부 실세인 김 원장이 현행 금융당국 체계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금융위와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 원장은 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금감원의 ‘정체성 되찾기’를 강조했다. 김 원장은 “금감원의 역할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고 영업행위를 감독하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금융 정책과 감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큰 방향에서 같이 가야 하지만, 정책기관과 감독기관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감독의 원칙이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금감원이 금융위의 하부 기관이 아닌 독립적 감독기구로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은 김 원장의 취임식 발언을 두고 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2012~16년)에서 야당 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줄기차게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요구해왔다. 산업 육성이 초점인 금융정책과 금융사 영업ㆍ건전성 감시가 목적인 금융감독은 이해상충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인데도, 금융위가 이를 동시에 관장하는 현행 체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김 원장의 취임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데도 지금까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마친 올해 하반기에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 국정과제에는 정부조직 개편 시 금융정책 및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금감원은 독립을 추진한다는 수준으로 개편 방향이 제시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로서 김 원장이 취임 전까지 소장을 맡았던 더미래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개편안은 보다 구체적이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부를 신설해 금융위 기능을 흡수하고, 감독 기능은 감독원으로 통합하는 안이다. 국회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올라와 있어 이러한 방안이 ‘표준안’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은 금감원 내부 여론과도 부합한다. 실제 금감원 내부에선 상급 기관인 금융위의 권한 독점으로 조직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금융위의 정책을 보조하는 업무에 치중해왔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한 금감원 국장은 “금융위가 정책을 설계하면 금감원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제공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내부에서 ‘조직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금감원 노조도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금감원이 그동안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영업행위 점검의 받침돌인 검사 기능은 내팽개쳐왔다”며 “김 원장이 금감원 기능 회복을 위한 대안을 찾는데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실제 금융당국 체제 개편 시도가 본격화될 경우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는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김 원장은 현 정권 실세인 반면 최종구 위원장을 포함해 금융위는 관료 조직이다보니 개편안 논의 과정에서 금감원을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른바 ‘금융위 패싱’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칫 양 기관이 조직 이해관계를 앞세워 심각한 갈등을 빚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편 김 원장은 시장이 그의 성향에 비춰 금감원이 금융규제 강화에 치중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에 대해 “참여연대와 야당 국회의원 때 당시 맞는 역할이 있었고 지금은 금감원장 위치에 맞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화와 균형을 중시할 것이고, 직접이든 언론을 통해서든 국민과 열심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또 “제가 일방적인 규제 강화론자로 잘못 알려져 있다”며 “국회 정무위원회 시절 자본시장과 관련된 규제를 제가 상당히 많이 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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