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프랑스의 자동차 부품 회사, 발레오의 자동차 전동화 부품 영업 담당인 오경석 과장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시승에 나섰다. GM 출신으로 볼트 개발에도 참여 했던 그는 아마 국내의 자동차 기자들보다 미국 브랜드, 특히 GM에 대해 이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캐딜락의 플래그십 SUV, 에스컬레이드 시승을 함께 하기로 했다. 미국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나 미국 그 자체에도 경험이 있는 그가 설명하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어떤 존재일까?
*아래는 오경석 과장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 대한 소감을 각색했습니다.
미국 시장을 이해해야 보이는 에스컬레이드
에스컬레이드는 그 어떤 차량보다도 미국적인 차량이기에 미국인들의 자랑과 같은 차량이라 할 수 있죠.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에스컬레이드 보다 더 좋은 차량을 살 수 있어도 에스컬레이드를 사게 됩니다. 일본의 부자들이 토요타 센추리나 크라운을 사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에스컬레이드를 보유했다’는 것이 하나의 ‘인증’과 같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미국적인 정서에 집중되어 있는 차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신의 캐딜락이 CT6와 XT5 등과 같이 많은 변화를 담은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에스컬레이드 만큼은 여전히 ‘미국적인 감성’에 집중하고 있는 차량입니다.
미국식 트럭의 감성과 캐딜락의 아이덴티티가 응집한 에스컬레이드
에스컬레이드를 일반적인 SUV로 봐서는 안되죠. 프리미엄, 플래그십 SUV 시장에서도 에스컬레이드의 존재감은 상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등과 같은 거대한 유럽형 SUV와 비교하게 됩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드는 그 기반 자체가 유럽의 SUV와는 완전히 다른 계보를 가지고 있죠.
시승차량은 5,180mm의 숏바디 차량이지만 전폭은 2m가 넘고, 전고는 1.9m에 이르는 엄청난 체격을 자랑하죠. 솔직히 이정도 사이즈의 SUV는 유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죠. 하지만 시선을 미국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쉐보레의 실버라도나 포드의 F-150과 같은 ‘평범한 픽업 트럭’만 되더라도 에스컬레이드와 비슷한 체격이죠.
실제로 GM 그룹 안에서만 보더라도 GMC의 유콘이나 시에라, 쉐보레는 앞서 말한 실버라도나 타호, 서버밴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고, 실버라도는 포드 F-150이나 램 1500 등과 함께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차량으로 ‘정말 흔하디 흔한’ 차량이죠.
물론 국내 도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북미에서도 강렬한 디자인은 한국 시장에서도 여전히 강렬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디자인이나 캐딜락 엠블럼의 가치보다는 체격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결국 미국 정서가 담긴 픽업트럭과 SUV가 아닌 유럽에서 넘어온 플래그십 SUV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사치품이 아닌 존재로서의 캐딜락
캐딜락이 에스컬레이드에 담고 있는 가치는 실내 공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캐딜락 고유의 듀얼콕핏 인테리어로 화려한 멋을 자랑하지만 미국의 픽업트럭에서 볼 수 있는 컬럼의 기어 레버나 비상등 등은 차량의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죠.
에스컬레이드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유럽의 SUV들은 사실 언제든 VIP를 위한 의전 차량으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드는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탑승자는 탑승자로서 평등해야 하고, 운전자는 운전자로서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죠.
실제 에스컬레이드의 시트에 앉으면 운전석 공간이 여느 캐딜락의 운전석 공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되고, 시트 포지션도 체격 대비 상당히 낮은 느낌이 듭니다. 즉, 운전자에게는 체격을 신경 쓰지 않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죠.
다만 유럽형 SUV들에 비한다면 고급스러운 매력이 조금 덜한 것이 사실이죠.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나 리어 뷰 카메라 미러 등과 같은 기능 등을 정말 매력적인 기능이지만 공간 자체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감성이나 만족감은 확실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2열 공간은 1열 공간에 비해 여유로운 건 사실이지만 CT6에서 느낀 VIP를 위한 의전 공간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다만 시트가 고급스럽고, 특히 살짝 뒤로 눕혔을 때 만족감이 높아 장거리 주행 시 탑승자가 편한 것은 강점이라 할 수 있죠. 3열 시트는 성인 남성도 앉을 수 있지만 레그룸을 조금 더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드라이빙
에스컬레이드에게 부여된 가장 큰 임무는 역시 ‘캐딜락 고유의 디자인을 앞세운 도로 위 카리스마’도 있겠지만 기능적으로는 단연 ‘미국 내 장거리 이동을 위한 고속 크루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주행은 미국 고속도로 주행의 일반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는 70마일 부근 및 70마일 오버 상황, 그러니까 우리 기준으로 약 112~120km/h의 속도는 물론이고 단번에 몇 개의 주를 지나야 할 때 언급되는 ‘100마일 크루즈’ 주행 상황에서 가장 높은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출력과 예상 외의 효율성 그리고 V8 엔진 특유의 존재감으로 무장한 에스컬레이드의 심장은 쉐보레 콜벳 C7 스팅레이나 국내 자동차 판매 역사에서도 ‘가성미 좋은 스포츠 쿠페’로 평가 받는 쉐보레 카마로 SS 등에 사용된 LT1 V8 6.2L 엔진의 한 종류 입니다.
이 엔진은 단순히 426마력과 62.2kg.m 강력한 토크를 자랑하는 것 외에도 풍성한 V8 사운드와 실린더 비활성화 기능 및 첨단 엔진 제어 시스템을 통해 2.6톤의 거대한 중량에도 두 자리 수 연비를 기대할 수 있는 주행을 선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시승에서 캐딜락 V6 엔진을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V6 엔진보다는V8 엔진이 더 좋네요. 게다가 북미 브랜드라는 특성답게 V8 엔진이 주는 만족감은 여느 V8 엔진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과시합니다.
솔직히 차량의 움직임에 있어서 처음에는 아쉬운 부분이 돋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CT6나 XT5와 같은 캐딜락에 비해 조금 흐릿한 주행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차량이 크다고는 하지만 어딘가 헐렁하고 헤픈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게다가 ‘늘 진리처럼’ 느껴지던 MRC가 이 육중한 차체를 가진 SUV에게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프리미엄 SUV의 주행을 기대했던 국내 탑승자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낮은 속도 구간에서는 ‘굳이 이정도 비용을 주고 에스컬레이드를 사야할까?’라는 고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속도를 높이고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기 시작하면 에스컬레이드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매력을 과시합니다.
V8 엔진의 감성만과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도로 위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구매할 이유로 충분하지만 RPM을 높여 달릴 때 느껴지고, 또 실내 공간에 울려 퍼지는 사운드나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주는 듣는 즐거움, 그리고 저속 상황에서는 어딘가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던 MRC의 존재가 다시 플러스 요인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며 인상적이 강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이정도 체격의 미국 차량을 경험한 스스로도 처음 저속 구간에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잠시 후 고속 주행 상황을 즐기며 미소를 짓는 스스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속 구간에서 ‘마치 우등 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는데 이 정도 체급의 SUV에게는 다소 버거울 정도의 스포티한 주행에서는 노면에 빠르게 반응하며 운전자에게 다음 행동을 요구하며 기민하게 차량의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글로벌하게 돌아올 에스컬레이드를 기대하며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실내 공간은 CT6나 XT5와는 달리 ATS, CTS와 비슷한 기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즉 최신의 캐딜락이라고 하지만 최신 중에서는 꽤나 ‘올드한’ 개발 기조가 반영된 차량이라는 것이죠. 실제 캐딜락은 최근 빠르게 변화하며 차량의 퀄리티나 움직임, 감성 등을 개선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미국 내수 지향의 감성’이 가득한 에스컬레이드는 차량 그 자체만으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감성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 감성을 아는 이에겐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기대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차량인 만큼 CT6나 XT5처럼 글로벌 시장의 기준까지 고려할 에스컬레이드가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에스컬레이드는 저에게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줄 존재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 모클팀 김학수 기자 / 오경석 객원기자(발레오 오토모티브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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